강원도 어느 산골짜기로 고요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 Sæbø라는 섬에서 5박 6일간 고요하게 보낸 시간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덕분이다. 외딴 섬을 찾은 건 세달 간의 북유럽 여행 중 거의 끝 무렵이었다. 가보고 싶은 곳과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라 여행 내내 마음이 분주했는데, 자연을 걷는 것 말고는 뭐가 더 없었던 덕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고요히 쉬어갈 수 있었다. 이때 우리는 이와 같은 여행을 ‘고요 여행'이라 이름 붙였다. 여행이라 하면 이곳 저곳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동적인 모습이 떠오르는데, 고요 여행은 이름만큼이나 정적이다. 너른 자연이 보이는 숙소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배가 고파질 만큼 걷고, 천천히 식사를 준비하고, 평소보다 한껏 느긋하게 밥을 먹고, 얼마간의 단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우리는 한국에서도 고요 여행을 이어가고픈 마음을 품었다.
몇 곳의 숙소를 찾아보다가 강원도 양구에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했다. 박수근 미술관 덕분에 양구라는 도시를 알고 있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가기가 퍽 어려워 보여서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다. 같은 강원도라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자가용이 없는 우리에게 양구는 땅끝마을 해남과 다를 바 없었다. 숙소의 이름은 ‘세상의 구석’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구석에 있길래 세상의 구석이라 이름 지었을까. 숙소의 위치를 찾아보니 양구 시내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세상의 구석'이라 이름 붙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강릉에서 춘천을 거쳐 양구에 내렸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나오기는 쉽지 않기에 여러 가게를 들러 5일 치의 식량을 단단히 준비했다. 빵집에서는 아침 샌드위치용 밤식빵을, 반찬 가게에서는 두부 조림, 파김치, 곰취 나물을, 하나로마트에서는 저녁 식사로 먹을 고기와 야채, 그리고 각종 식재료를 샀다. 장을 보기 전에도 두 배낭은 이미 촬영 장비, 몇 권의 책과 노트, 원두와 디저트, 그리고 추위를 대비한 옷가지들로 꽉 차있었는데, 장을 다 보고 나니 짐이 양손 가득이었다.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갈 요량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공간지기 선생님께서 시내까지 우리를 태우러 와주셨다. 차에서 내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와아… 하고 조그맣게 감탄했다. 공간지기 분들과 공간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는데 5일의 시간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러 공간 중에서도 자연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거실이었다. 두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었는데, 소파에 앉으면 창 너머로 꽃이 심어져 있는 마당이 보였고, 더 멀리는 초록빛으로 물든 산과 구름을 품은 하늘을 방해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거실 뿐만 아니라 숙소 어디든 창이 많기도 하고 크기도 하여 자연 안에 있거나 자연과 이어져 있는 느낌을 연거푸 받았다. 자연의 풍경을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경(借景)을 몸소 깨닫는 공간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나, 거실 소파에 누워있으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나,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으나 어디든 초록빛 풍경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 마음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해졌다. 특히 아침에 일어날 때나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초록 풍경을 보며 눈을 뜰 수 있다는 게 시각적으로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어느 철학자의 말마따나 ‘시선이 닿는 곳까지가 나의 몸’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육체는 실내에 있지만 시선이 먼 곳까지 닿으니 몸의 경계가 넓어지고 실내와 바깥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창이 클수록 실내의 심리적 경계가 넓어지기에 카페에서는 통유리 인테리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도심 속 카페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스마트 폰을 보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쉽사리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물론, 세상의 구석에서도 책상이나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시야에 움직임이 빈번하게 감지되어 고개를 들게 된다. 그들의 정체는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꽃의 꿀을 빠는 나비, 딱새와 노랑할미새,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자작나무,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이다. 시선을 빼앗는 존재들이 도심 속의 것들과는 다르게 요란스럽지 않고, 속도도 무척이나 느려 퍽 정겹다.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느리고, 조용하고, 차분한 걸 찾기 마련인데, 정물화 같은 자연 속에 머무르고 있다 보면 자그마한 움직임들에 눈이 가고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떠오르는 생각도 달라진다. 이곳에서 보이는 건 자연뿐이다. 건너편 산을 가만 바라보면 비슷해 보이는 초록에서도 다채로운 초록 팔레트를 발견한다. 자작나무 잎의 초록과 소나무 잎의 초록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고, 마당에 핀 꽃과 나비의 이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어찌나 나비가 많던지 공간지기 선생님께서는 스페인어로 나비를 뜻하는 ‘마리포사(mariposa)’로 숙소의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숙소에 머무르면서 하얀 나비, 호랑 무늬 날개를 가진 나비, 점박이 나비 등 다양한 생김새의 나비를 만날 수 있었다. 산골짜기에 살다 보면 ‘자연’이라는 두 글자 속에 깃든 무한히 너른 세계를, 그리고 그 안에 머무르는 다양한 존재들을 세세히 알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마음이 쌓이다 보면 꽃, 새, 나비, 달, 별, 구름, 나무, 산나물에 대한 앎이 시나브로 늘어나지 않을까.
초록빛이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면, 실내에 있는 조명을 모두 끄고 마당으로 나섰다. 스마트 폰 손전등을 켜지 않으면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나마 무언가 보이기 마련인데, 깜깜한 밤이 되니 모든 것들이 자취를 감췄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별 뿐. 눈이 깜깜함에 적응할수록 더 많은 별들이 보였다. 허리와 목을 꺾어 별을 바라보는 게 위태롭기도 하고 목이 뻐근하기도 하여 벤치에 두 머리를 맞대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추위에 덜덜 떨며 숙소 밖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시 자러 들어가는 순간이 떠올랐다. 밤하늘에 쏟아질 만큼 가득한 별을 본 순간이었다. <세상의 구석>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별을 보며 네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신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러고는 네팔에 유난히 별이 많은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도심에 인공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가 많아 별이 잘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숙소에서 할 수 있는 활동적인 일은 걷기뿐이다. 숙소 주변에는 임도(林道)가 있는데, 임도는 나무를 옮기는 목적으로 산 중턱에 만든 도로다. 우리는 임도를 좋아한다. 물론, 엄지와 검지로 한껏 확대하기는 해야 하지만, 카카오 맵에서 들머리와 날머리를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관리되지 않은 무성함이 마음에 든다. 잘 가꾸어진 산책길보다 날 것의 자연에 더욱 가까워서일까. 산책로에는 보행 편의성을 위해 야자 매트나 데크가 깔려있고, 어디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안내판과 이정표가 곳곳에 있고, 무엇보다도 중간 중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반면 임도에는 1t 트럭이 지나다닐 수 있는 너비의 흙길만 있을 뿐, 산책을 위한 편의성이라고는 일절 없다. 그래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지만,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우리가 임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양구의 임도는 강릉의 임도와 다르게 자작나무들이 즐비했고, 걷는 동안의 미세먼지는 0이었고, 하늘은 유달리 파래서 핀란드의 숲을 걷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한국의 산토리니처럼 한국의 OOO이라 별명 붙이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양구의 임도를 연신 핀란드 숲이라 이름 붙이고 있었다. 한국의 산토리니라 이름 붙인 사람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마음이었을까. 길 중반 즈음에 다다랐을 때, 맑고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새의 울음소리인지 어느 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노랫소리가 하도 깊고 맑아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니 조용한 숲에서는 두 명의 발걸음 소리마저 소란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숨소리마저 줄이고 새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였다. 매일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이런 숲길을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는 3km 남짓, 임도를 천천히 걸으며 숲내음을 만끽했다.
머무르는 내내 늘 음악과 함께 했다. 숙소에 놓여있는 CD들은 숙소를 꾸미기 위해 가져다 놓은 인테리어 오브제가 아니라, 음악에 관심이 깊은 공간지기 선생님이 오랜 시간 들어온 취향 가득한 것이었다. 향기로운 음악을 웅장한 사운드로 들으니 공간에 풍요로움이 더해졌고, 오랜만에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꼈다. 4박 5일간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커피를 내려마시고, 낮잠을 자고, 새와 나비를 관찰하고, 초록빛 풍경을 바라보고, 별을 보고, 임도를 걸었다. 누구에게는 심심함과 삼삼함을 넘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을까 싶은 시간들이었다. 고급 호텔에서 느낄 수 있는 호사스러움도 있겠지만, 대자연을 바라보며 시각적 즐거움을 잔뜩 누리는 또 다른 호사스러움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이 곳에서 일 년 즈음 살아보면 어떨까. 얼마간 살다 보면 외진 곳에 사는 게 무섭고 답답하게 느껴질지, 아니면 고요함을 깊이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