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아옹. 야아옹. 야아아아옹. 길 가다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눈곱이 낀 아기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 주위에 파리가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모든 게 귀찮다는 듯이 드러누워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화들짝 놀란 고양이는 갑자기 수풀로 뛰어들었다. 얼마나 빠른지 묘목 사이를 들춰봐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뛸 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영은이 김밥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어제 그 고양이를 봤다고 했다. (고양이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자네와 함께 지나갈 때 인기척을 느꼈는지 온 힘을 다해 ‘야옹' 했다며, 보란 듯이 수풀 속에 누워있는 것도, 야옹 하는 소리도 모두 도와달라는 의미 같다고 했다. 영은이는 이 길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라며, 다들 차로 오르내리느라 아무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날은 마침 우리가 여행지로 출발하는 날이었고, 이제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일단 물병과 수건을 챙겨서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풀숲 사이로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기 고양이가 장례 치르던 날의 아로하처럼 옆으로 곱게 누워 있었다. 순간 ‘아, 떠났구나.’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가 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아닌가. 숨이 붙어는 있구나. 파리는 어제보다도 더 들끓었다. 파리들을 내쫓고, 눈을 찌르고 있던 식물을 치우고, 고양이를 살포시 들었다. 가까이 다가갔다고 까칠하게 ‘야옹!’ 하며 도망가 버리던 그 고양이는 어디 가고, 엄마가 아닌 줄 알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에 후회가 밀려왔다. 어제라면, 어제 좀 더 열심히 찾았다면 살릴 수 있을까. 수건으로 고양이를 감싸고 입 주위로 물을 방울방울 흘려줬다. 정신이 든다는 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힘겹게 꾹꾹이를 몇 번 했다.
손으로 고양이를 만져보았더니, 여름날인데도 고양이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몸에 생긴 상처 사이로 파리들이 알을 낳은 것이 보였고, 호흡도 가빴다. 지구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에 가슴이 무너졌다. 고양이 몸이 조금 더 따뜻해질까 하는 바람으로 한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고통이 커지는 듯했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동안 자네는 얌전히 우리를 기다렸다. 짖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다 안다는 듯이. 저 고양이를 얼른 구해달라는 듯이. 우리가 지금 고양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영은이 일단 당근에 구조 요청을 했다. 놀랍게도 곧바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30분 거리에 사는 분이 고양이를 맡아 병원에 데려가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서둘러 떠났고, 내부 순환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는 동안 말 없이 울었다. 한 시간이나 됐을까.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죽은 아기 고양이를 찻길에서 봤고, 싸늘하게 식은 몸을 길가에 묻어주었다. 가족과 제주도 여행에 갔을 때 한 고깃집 앞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했다. 고깃집 아저씨는 고기 굽던 두툼한 손으로 익숙하다는 듯이 고양이를 들어 따뜻한 수건으로 눈곱을 떼주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곧 죽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해주면 사람 마음이 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와 무엇이 달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행에 가서도, 돌아와서도 이 아기 고양이가 아른거렸다. 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감동,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고양이의 얼굴, 내 손에 느껴지던 온도, 그럼에도 또 태어나고 있고 태어날 고양이들, 여러 기억과 감정이 뒤죽박죽된 채 며칠을 보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기 고양이를 만난 순간, 온몸을 먹먹하게 휘감았던 연민의 감정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고양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줘서가 아니라, 고양이가 무슨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고양이가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도와야 했고, 간절히 돕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이 내 마음 안에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마음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어서, 나보다 훨씬 더 넓은 마음으로 손을 뻗어준 사람이 있어서 또 한번 놀라웠다.
그날 아기 고양이의 말을 온몸으로 들었다. 그걸 해석하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기 고양이는 나고, 영은이고, 자네라고. 우리 부모님이고, 원수같은 옆집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 고양이들은 지금도 무수히 태어나고, 또 죽는다고.
이 고양이는 태어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팠지만–그래서 내 마음도 더 아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아플 것이다. 또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숨 쉬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태어난 모든 존재는 사랑받고 돌봄 받아야 마땅하다는 단순한 진실을 잠시나마 바라보았다. 이 고양이는 까마득히 미뤄둔 생의 본질을 내게 알려주러 왔을까?
- 그렇지.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지. 친구야, 앞으로도 너를 종종 생각할게. 너는 나에게 큰 선물을 줬어. 내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진실에 다가설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보이지 않는 곳에 진실이 있다는 걸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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