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8 (아직도 여름) @다크에디션, 아이스드립
어제는 묵을 처음 쒀봤다. 주말에 지언이 부모님 댁에 놀러 가서 어머니께 배웠다. 도토리 전분 가루와 물을 1:5로 섞고 약한 불에서 20분 정도 슬슬 저어주면 점점 묵이 된다. 별것 아닌 레시피지만 20분이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주걱으로 슬슬 젓기 시작하자 점점 덩어리가 지더니 10분 정도 지나니 찐뜩하니 거의 다 된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 이거 다 된 거 아닌가요?”
“다 된 것처럼 보이지? 지금부터 10분 더 저어야 진짜 맛있어져.”
10분만 저어도 묵 모양은 나오는데 탄력이 떨어지고 맛도 별로라고 한다. 10분 더 실시! 정말 20분쯤 되자 묵 색깔이 살짝 투명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 묵이 좀 투명해진 것 같은데요.”
어머니는 시계를 정확히 확인하고서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그릇에 묵을 나눠 담고 밤새 식혔다. 아침에 일어나니 뜨끈한 묵사발이 식탁에 올라왔다. 국물을 먼저 떠서 한 숟갈, 시원한 멸치 육수에 고소한 묵의 향기가 배어났다. 음~ 너무 맛있다. 가로로 기다란 묵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힘없이 툭 끊어지지 않고 탱글탱글하다. 영은이가 20분 동안 잘 저어서 그렇게 젓가락으로 집어도 흘러내리지 않는 거야. 10분 차인데 덜 저으면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묵이 죽처럼 흘러내려 버려. 어머니가 말했다. 다 된 것처럼 보여도 다 된 게 아니었구나. 사실 10분이 지나고부터 팔뚝이 좀 얼얼해지기 시작해서 시계를 계속 확인했었다. 국내산 도토리 가루와 육수, 소량의 천일염만 섞어서 묵을 만든다는 한 레스토랑 쉐프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팔이 빠지도록 젓는다’고 한다. 팔이 빠지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맛있는 묵이 되는 거였다.
진짜 더웠던 올여름에 유난히 에어컨에 집착했다. 특히 노면에 주차된 차를 탈 때는 앱으로 미리 에어컨을 틀어놨다. 어쩌다 미리 틀어놓는 걸 깜박하면 몇 분 전의 나에게 버럭 짜증이 났다. 목적지가 있을 때는 최대한 빨리 가는 길을 검색했다. 그건 너무 자동적인 습관이라서 왜 그렇게 빨리 도착해야하는지 같은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다.
“차 탈 때 최적화하는 거 좀 그만하면 안 돼?”
지언이 말했다. 오늘도 운전대 앞에서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내 몸이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덜 밀리는 길을 찾고 더 빨리 도착하려고 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야 하는 퀘스트를 받은 사람처럼 계속 무언갈 하고 있었다. 근데 잠깐만, 그 퀘스트는 누가 준 거지?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32층까지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내려올 생각을 않고 … 기다리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다.
“엄마 나 더워. 에어컨 틀어줘!”
꼬마가 더웠는지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했다. “여기는 집이 아니라서 에어컨이 없어. 집에 가서 에어컨 틀어줄게.” 엄마가 말했다. 한참 지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모두 약간 짜증스러운 얼굴로 우르르 타고 내렸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아이의 말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 말에서 내 모습을 봤던 걸까. 시원함을 원하면 바로 시원함이 주어졌다. 밤 11시 전에만 결제하면 다음 날 아침 7시에 문 앞에 상품이 도착했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살짝 당기기만 하면 새로운 소식이 무수히 쏟아졌다. 무엇이든 거의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렇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 플럼빌리지라는 명상센터가 있다. 그곳에는 7~8월이면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는데 3~4월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곳이 전부 해바라기 밭이라고 해도 잘 믿지 않는다고 한다. 꽃이라고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곳에 계신 스님들은 해바라기 씨앗을 직접 심었으니까 안다. 비가 세차게 내린 후 태양이 타오르면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난다는 사실을. “여기가 전부 해바라기 밭이라고요? 에이 거짓말이죠! 아무것도 없잖아요!” 사람들이 잘 믿지 않아도 스님들은 그저 빙그레 웃는다. 해바라기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해바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을 정리하면서 투자사와 마지막 식사를 했다. 시작도 아니고 마무리하는 과정 중에 식사를 제안해 주셔서 놀라고 감동했다. 남산 소월로의 작은 공간에 찾아온 두 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시간은 흘렀지만 아담한 식당에 다시 마주 앉으니 그날이 떠올랐다. 이제는 투자사와 회사 관계를 떠나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함께 겪어낸 고마운 친구와 나누는 대화들 같았다. 시작하던 그날처럼 마무리하는 날에도 많이 웃었다. 4년 전에 소월로에서 만났던 날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는지 한 분이 입을 뗐다.
“어제 투자 회고를 하면서 제가 좀 실수한 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왈이랑 투자 미팅하면서 제일 많이 대화했던 게 속도에 대한 거였잖아요. 두 분은 두 분만의 속도가 있다고 했고 저희는 조금 빨리 스케일업을 원했었고요. 저는 그때 좋은 명상 콘텐츠를 딜리버하면 미국처럼 한국도 이 시장이 분명히 커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좀 성급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두 분이 투자받지 않고 두 분의 속도대로 천천히 하셨다면 그게 더 최적의 경로이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를 했어요. 명상 시장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요. 5~10년 생각했는데 30~40년 걸리겠구나 싶어요.”
‘투자를 받지 않았다면’ 그 문장으로 시작하는 가정은 수백 번도 더 해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투자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는 것을. 후회가 담긴 회상을 끝까지 들으면서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요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거나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눈으로 보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지금 당장은 아름다운 꽃으로 드러나지 않았어도 진짜로 없거나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것 같아요. 씨앗을 심은 우리는 아니까요. 사실 … 저는 30~40년도 빠르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면서 저희가 하는 이 일이 다음 세대에 누군가 이어서 할 수만 있어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 100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요? 하하하.”
최적의 경로로 안내하겠다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들으면서 최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가장 최(最) 알맞을 적(適)을 쓰는 최적이라는 말에 ‘가장 빨리’ 의미는 하나도 없다. 최적의 경로는 가장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 가장 알맞게 가는 길이다. 최적의 묵 맛을 보기 위해서는 다 된 것처럼 보여도 10분 더 저어야 하고, 최적의 해바라기가 피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년 동안은 충분히 내리는 비와 타오르는 태양이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 알맞은 조건이 되면 묵은 저절로 맛이 나고 해바라기는 저절로 피어난다. 최적의 경로는 가장 빨리 간다고 찾아지지 않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