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커플이 선물을 갖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리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고생하는 여자친구에게 고급 다리 마사지기를 선물해줬는데, 다리 마사지 기계의 크기가 공기청정기만큼 컸던 것이다. 기능이 많은 다리 마사지기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선물이겠지만, 작은 원룸에 이 기계를 놓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단다. 묻지도 않고 이런 거대한 물건을 보내다니.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선물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한 일이겠지만, 뭐든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귀하고 좋은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벌칙이 될 수도 있다.
혼자 집에서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을 때 어떤 날은 천국같고, 어떤 날은 지옥같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어도 내가 원하는 것이 달라서다. 나는 나가서 놀고 싶은데 집에 있는 날은 지옥이고, 혼자서 사색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마침 집에 혼자있다면 천국이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서 지금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뭘 원하니?
놀랍게도 남에게나 나에게나 뭘 원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참 드물다. 무조건 좋아할만한 것, 혹은 ‘객관’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의 기준에서 좋은 것을 주려고 하고, 내가 바라는 것이 상대가 바라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나에게 ‘뭘 원하니?’ 하고 묻지 않는 것은 당연시된다. 나는 나니까 자신을 잘 안다고 확신한다. 사실은 늘상 물어도 알기 어려운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이라는 게 따로 있다면,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을 나누는 분기점이 아닐까.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큰 사랑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묻는 데에는 ‘저 사람은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행복과 건강, 성장을 나의 바람과 분리해서 조건없이 바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작은 사랑이다. 조건적이고, 나의 이해관계와 분리되지 않은 사랑이다. 사소하게는 여자친구가 원하지 않는 다리 마사지기를 사주는 것처럼 말이다.
큰 사랑은 힘들다. ‘큰 사랑’이라고 하면 연인이나 친구 간의 사랑보다는 부모님의 사랑이 떠오르지만, 엄마, 아빠들도 큰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늘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가 자식을 축구 선수로 키워내려고 고군분투하고, 늘 가슴이 작아 컴플렉스였던 어머니가 딸에게 가슴 수술을 하라고 은근히 압박하기도 한다. 아들은 사실 케이크를 굽는 게 더 행복하지만 베이킹은 좋은 취미라고 굳게 믿는다. 딸은 몸매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좋은 것을 자식에게 주고자 한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정말 내 자식이 바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쉽나. 일단 물어보는 것부터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물어보고 나서도 문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그 사람이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럼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깊게 성찰해보면 내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과 건강, 그리고 성장이다. 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 와닿을 때가 있다. 나는 그와는 다르게 살아온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백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까지 내가 주었던 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구나, 하고 반성하게 될 때 말이다. 나의 작은 도움으로 그 사람이 이전보다 5% 행복한 삶을 살면, 그게 돌고 돌아 행복으로 나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오늘 나는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