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3 (폭염주의보) @에프이에이티, 아이스 라떼
11월에 이사를 간다.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는 날 약간 실감이 났다. 좋았던 연희동 생활을 정리한 채 우리가 가게 된 곳은 성내동이다. 계약서를 쓰던 날 집주인 분이 여기는 커피집도 많고 공원도 가까워서 사실 자기도 이사 가기 싫다며 동네를 자랑했다. 점점 크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큰 평수로 이사를 가게 됐다면서. 커피와 공원이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와 공원은 우리의 일상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삼시세끼 밥만큼이나 중요했다. 처음에 성내동을 택한 것도 올림픽공원 하나 때문이었다.
올겨울 강동구에서 명상센터를 열 계획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이사를 준비했다. 원래는 센터부터 열고 이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보금자리가 먼저 자리 잡아야 센터에도 마음을 쏟을 수 있을 거라는 친구의 조언에 마음을 바꿔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부동산 앱을 들락거리며 눈이 빠지도록 집을 봤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는 금액으로 전세금 필터를 걸고 집을 보다가 점점 더 눈이 높아져서 필터를 꺼야만 마음에 드는 집이 생겼다. 몇 개의 빌라와 아파트에 실제로 방문했는데 빌라에 가면 천장이 낮거나 공간 구분이 아쉬웠고, 오래된 아파트에 가면 해가 들지 않는 방향이 아쉬웠다. 그렇게 계속 더 나은 집을 찾다 보니 가격이 계속 올라갔다. 결국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은 준공 연도가 얼마 되지 않은 준신축 아파트였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나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떼를 썼다.
“나는 최대한 도움 안 받고 우리 힘으로 하고 싶어. 근데 이 집은 너무 과한 것 같아.”
“나도 알아. 아는데… 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없는 사람처럼 대해.”
집을 보고 온 날에 지언과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로 가려면 부모님 도움도 필요하고 대출도 필요했다. 나는 마치 장난감 가게에서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굴었고 지언은 중요한 결정 앞에서 홀로 힘들었다.
“지금 너랑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 어린 영은이가 말하는 것 같아.”
지언이 내 눈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 그래 맞아. 그런 것 같아. 내 안에 아이가 울고 있는 것 같아.”
10대 시절 대구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3번의 전학을 다녔다. 손에 다 꼽지 못할 이사는 말할 것도 없고 잠시 이모 집에 맡겨져서 엄마와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집이 있었지만, 집이 없는 마음이었다. 이모 집에서는 사촌 동생 방에 2층 침대를 놓고 같이 지냈고, 엄마와 살던 학창 시절에는 방이 한 칸뿐이어서 같이 잤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아늑한 집을 원했고 무엇보다 내 방이 있기를 원했다. 처음 내 침대와 책상이 생긴 건 대학생이 돼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였다. 어릴 적 나의 집은 언제나 무섭고 긴장되고 또 외로운 곳이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갑자기 들이닥쳐 집의 물건들을 부수는 곳, 언제 또 갑자기 이사 갈지 몰라서 나에게 소중한 물건들을 보관할 수 없는 곳, 늦은 밤이 되어야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드는 곳, 어릴 적 집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서울에서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아주 작은 방을 택했다. 잠만 잘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정말로 잠만 잘 수 있으면 됐다. 밖으로 나가야 오히려 편안했기 때문이다. 편안했다기보다 그래야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나 밖으로 나갔고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게 최대 관심사인 사람처럼 지냈다. 자취방도 나에게는 불안정하고 외로운 곳이었다. 성인이 되고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슬픔이 거기서 같이 살았다.
지언을 만나고 함께 일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우리는 연희동으로 이사를 했다. 전세였지만 꽤 공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다. 사람들이 뭐 하러 남의 집에 아깝게 돈을 쓰냐고 했지만 ‘어쨌든 몇 년 동안은 내가 사는 집이잖아? 그럼 내 집이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연희동 집은 정말 아름다운 집이 되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색으로 벽과 문을 칠하고 취향이 담긴 조명으로 교체했다. 이후 4년 동안 연희동 집에 살면서 여행을 잘 안 갔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에 가도 집만큼 좋지 않았다.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겠지만 나는 그랬다. 연희동에 살면서 처음으로 집에서 편안함과 아늑함 그리고 안정감을 느꼈다. 집에 있으면 정말로 집에 온 것 같았다. 이제는 집에 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지언과 자네가 있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하는 나의 가족이었다. 집은 사계절 내내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집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던 오래된 외로움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연희동 집이 나에게 남다른 의미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우리가 일 때문에 다시 이사를 가야할 수도 있다는 대화를 나누고부터였다. 나는 최대한 연희동에 더 있으려고 했다. 서대문구에서 강동구로 두세 시간 왕복 통근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가끔 강동구로 가는 강변북로의 꽉 막힌 도로에서 하릴없이 서 있으면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곤 했다. 나는 연희동 집을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됐을까? 사실 너무 높은 언덕에 있고 주차도 어렵고 층간 소음도 있고 제일 넓은 방이 하필 볕이 전혀 들지 않는 방이라 옷방으로 쓸 수밖에 없는, 별로 합리적이지 않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희동 집에서의 많은 기억은 어쩌면… 내가 찾아 헤매던 보호자를 만난 것과 비슷했다. 안전하고, 따뜻하고, 안길 수 있고,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연희동 집에서 지언과 자네에게 받은 사랑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안정적인 사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사 가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이사 결정이 내면의 지진을 만든 건 집에 담긴 나만의 의미와 해석이 그만큼 묵직했기 때문이었구나. 그렇게 어느 정도 마음을 알아차리고 정리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새로운 동네에서 우리에게 맞는 집을 고르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집 더 나은 집에 대한 욕심과 집착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천장이 낮은 집, 볕이 들지 않는 집, 방이 작은 집,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집, 옆집과 거리가 너무 가까운 집, 기름때가 있는 집, 방문이 없는 집, 낡고 허름한 집, … 집을 볼 때마다 집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실 모두 적당히 괜찮은 집들이었지만 나는 집을 집으로만 보지 못했다. 과거에 무섭고 두렵고 긴장되고 외로웠던 집에 있는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런 집을 보고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더 좋은 집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밤 11시 12시 … 새벽 2시까지 빨간 눈을 하고 집을 찾았다. 그때 내가 찾던 건 집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거였을까.
“우리 뇌는 불안에 잠식당했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면 다시 안정감을 느끼는 뇌로 재배선 rewire the brain 된다. 인간은 유아 시절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사랑과 사람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며, 성인이 되어 자기 자신이 자기를 사랑하려고 애쓰고 또 안정적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 지속적인 사랑을 하면 인간의 뇌는 재배선 되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태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불어 자기 자신이 자기를 양육하는 것을 통해서도 인간은 치유되고 성장한다. 인간은 유아 시절의 상처를 청산하고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 김지윤, <모녀의 세계> 중에서
새로운 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집으로 돌아온 날, 다른 이유로 잠에 깊게 들지 못했다. 내 내면 아이의 울부짖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지언의 입장과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지언은 그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진이 빠진 것 같았다.
“근데 사실 우리는 남아공에 떨어뜨려놔도 잘 살 걸?”
이번 이사를 준비하며 좀 더 먼 미래에 있을 다음 이사를 상상해 본다. 그때는 우는 어린 나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이제는 괜찮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가 곁에 있을게. 내가 너를 안아줄게. 보호해줄게. 내가 너의 집이 되어줄게. 괜찮아, 이제 여기는 안전해.”
맞아. 남아공에 가도 우리는 잘 살거야. 커피집이 없으면 커피 나무를 직접 키우겠지. 그렇게 재미나게 살겠지. 중요한 건 커피랑 공원이 아니었어. 네가 나의 집이 되어주고 내가 너의 집이 되어주면서, 사랑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삶이었던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