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2. 날씨 모름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렌지 주스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본 경험이 얼마나 되나요?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이십 대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내가 ’솔직함‘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 이 고질병은 대개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을 숨기고 괜찮다고 말하는 데서 발현된다.
"괜찮아, 괜찮아."
어떨 때는 진짜 괜찮기도 했고 어떨 때는 작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남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솔직하지 못함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연애를 시작하고부터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배려로 느껴지지 않으면서부터. 보고 싶으면 보면 되는 건데 상대방이 안 피곤하다고 해도 피곤할까 봐, 굳이 굳이 내 선에서 상대를 돌려보낸 적이 여러 번이었다. 아주 깊숙한 마음으로는 나도 보고 싶으면서도! 상대는 너무나 솔직한 사람이어서 이건 분명 문제가 되었다.
2주 전쯤, 회의가 끝나고 동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최근 호흡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날도 숨이 조금씩 가빠지는 걸 느꼈다. 일부러 크게 크게 숨을 쉬었다. 집에 돌아와 잘 준비하고서는 늦은 시간 퇴근하는 애인과 잠시 통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내다 통화 말미에 오늘도 숨 쉬는 게 자연스럽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애인은 이야기를 쭉 듣더니 보고 싶다며 잠깐 보러 오겠다고 했다. 사실 그날의 나는 애인이 무척 보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시간이 늦었고, 오늘 원래 보기로 했던 날도 아니었고, 네가 피곤할 것 같다는…. 구구절절한 말들이었다.
그 말의 기저에는 ‘내가 숨 쉬는 게 불편하다고 말해서 괜히 걱정을 시켰구나’의 마음이 있었다. 말하지 말 걸 곧바로 후회하면서. 돌이켜보면 그저 보러오라는 말 한마디였으면 됐을 텐데, 나는 습관처럼 과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애인은 나의 솔직하지 못함이 본인에겐 상처가 된다고 했었는데. 몇 번의 말이 오가며 나는 나의 완곡한 거절이 상대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걸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알다시피. 그게 너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면서 자꾸 그렇게 행동해서 미안해. 나는 내가 솔직하게 무언가를 털어놓았을 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나 봐.”
두 손을 꼭 잡고 처음으로 한 이야기. 나도 말하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야기.
이 말을 입으로 내뱉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을 때 내가 수용 받지 못할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약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 누군들 솔직히 행동하기가 쉽겠냐마는 나는 방어기제가 더 강한 사람임을 연애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애인은 고개를 숙이고 얘기하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계속 불편해하는 나를 기다려주었던 시간과 그 포옹은 내가 수용 받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솔직한 마음 한 꺼풀을 보여도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 오히려 한 꺼풀 가까워진다는 사실만 나에게 남았다. 아직도 솔직한 마음을 보이는 것이 어렵지만 영영 어려운 상태로 남고 싶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솔직함과 가까이 있는 내가 되고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