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1. 목요일 비가 올까봐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는 장마… @보리수, 팥빙수
6월 한 달 동안 몸담고 있는 커뮤니티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에서 ‘#너를사랑해나의마음이( #너사나맘)’라는 주간 회고 모임이 진행되었다. 14명의 인원이 일요일 저녁에 모여 자신의 일주일을 돌아보며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이 모임은,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점에서 내가 꿈꿔왔던 커뮤니티 내의 구체적인 ‘돌봄'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기존에도 주간 회고를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해왔었지만, 한 번 쓸 때 반나절씩 소요되기 때문에 바빠지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FDSC에서 진행한 #너사나맘은 그중 한 꼭지 정도 쓰는 수준이라 바빠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신나서 참여했다. 무엇보다 혼자 떠드는 것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남겨주는 댓글이 꾸준히 할 수 있는 큰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참여하고 나서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을 매주 마주했는데, ‘매번 뭔가 하고 있고 바빠 보이는 유진님. 회고마저도 전교 1등 노트 같은 유진님. 너무 열심히 사는 유진님.’과 같은 댓글이었다. 새로 만난 친구들이 남겨준 댓글들은 내가 아직도 너무 경직된 채로 지내고 있다는 경각심을 주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병’을 고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열심히 병'을 고치고자 했던 순간은 두 번 정도 있었다. 첫 번째는 허리 디스크로 1년 정도 누워있을 때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여태껏 그림을 그려온 시간, 공부를 해온 시간, 작업을 해온 시간 전부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기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나이 또래는 없어서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고자 길고 긴 치료의 시간을 견디고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두 번째로 결심했던 순간은 번아웃이 와서 퇴사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쉴 휴'자를 두 번 넣은 ‘스튜디오 휴휴'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이름 따라간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개업했는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어딘가 고백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엉망진창인 매일을 지내고 있다. 스스로를 위하고 배려한다면 절대 이 정도의 양의 일을 하지 않을 텐데… X(구 트위터)에서 본 문장이 비수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챙길 생각 하는 것도 회피다. 아무리 좋은 명분으로 떡칠해도 나한테 남는게 없고, 내가 계산을 잘못한거면 거기서부터 고칠 생각을 해. 자기꺼 야무지게 챙길 줄도 모르면서 주제 넘지 말고. 과거의 나한테 하는 말이고 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거 보면 걍 할말이 없음.” (@LESBOSS_K)
최근에 <놀면 뭐하니> 샤이니 출연 클립에서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했을 때의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리허설 때 땀 흘리며 너무 열심히 하면, 본방송 때는 정작 젖어서 예쁘지 않게 나온다고 스태프들의 우려 섞인 조언에, “두 달 이상 저 노래를 연습하다 보니까 살살 하는게 안되는 거예요. 그냥 100으로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몸에서”라고 말하는 민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열심히'는 8년간의 입시가 내 몸에 짙게 새긴 습관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는 덕질도 너무 ‘열심히'해서 문제였다. 도대체 왜 그냥 가볍게 즐기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할까.
그렇다면 똑같은 입시를 경험한 모두가 비슷한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그즈음에 만났던 구구님이 ‘성실함과 불안은 유전’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개천에서 난 용인 아버지는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공장에서 틈틈이 공부하며 고려대에 입학했다. 괭이부리마을 아이에서 노량진 입시학원 일타 강사가 된 아버지 눈에 나는 평생 게으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필히 유전에 새겨져 있으리.
선천, 후천, 그리고 운명까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현재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근심이 깊어졌다. 답답한 마음을 껴안고 오랜만에 만난 지언 님과 영은 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마음을 돌보는 것에 나름 5년이나 꾸준히 책을 읽고 실천하고자 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제자리인 것인지… 지언 님은 영점 조절을 위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5년 전이랑 같을 리는 없다고도 이야기해주었다.
맞아. 5년 전과 현재의 나는 분명 다를 터였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 노력을 낮추고 싶지 않다. 나는 마음 공부 마저도 꽤 성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많이 나아졌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지금 또 한 번 크게 변화해야 할 타이밍이 찾아왔을 뿐이고, 앞으로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피어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