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을 받은지 어느새 햇수로 4년째다. 가끔 “저는 4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데” 라고 하면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개중에는 근심스럽거나 조심스러운 얼굴이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상담으로 회복과 화해를 한 내 경험을 주위에 적극적으로 말하고, 권유하는 타입이다. 그것은 일종의 민들레 홀씨를 흩뿌리는 마음이다. 이렇게 후 불며 이곳 저곳으로 홀씨를 흘려 보내다 보면, 시간이 지나서 뜻밖의 곳에서 싹이 필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나의 이 한 마디를 떠올리고 상담소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 삶에 존재하는 문제가 너무 또렷하고 명징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소를 찾았다. 세션 1회에 10만원이니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했기에 성실히 상담에 참여했다. 그리고 성실함은 배신 없이, 늘 정직하게 보답한다. 지난 4년간 상담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더 기울어져 있었을까? 누군가 한 번은 상담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나의 경우는 상담을 통해 어떤 것을 얻었다기 보다, 무언가를 잃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구태여 부연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언가’에는 무수한 것들이 포함된다. 일주일 치 살아갈 힘, 나아질 거란 믿음,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삶의 감사한 구석들, 나다움, 등등. 때로 우리의 삶에서는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있으니까.
내 상담 Phase 1는 일종의 ‘평탄화’ 작업이었다. 내 마음 안에 유독 불쑥 솟아오른 감정, 푹 꺼져있는 구멍, 그런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꺼진 곳엔 흙과 물을 주고, 불쑥 솟아 오른 곳은 매만지며 키높이를 맞춰주었다. 그렇게 마음이 단단해지고 정돈되어감을 느낄 무렵 한 차례 ‘졸업’을 권유 받았지만, 상담의 목적을 조율하여 Phase 2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Phase 2에 들어선 나는 한동안 훨씬 덜 간절하고, 덜 성실했다. Phase 1에서 최소한의 화해와 회복을 마친 덕에, 마주하는 삶의 문제가 다소 추상적이고 간헐적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얼마나 성실히 참석하는지 보면 내 마음이 요즘 어떠한지 알 수 있다는 이 역설 아닌 역설이, 내가 꽤 많이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더 건강해질 구석이 많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다시금 성실히 상담소를 찾고 있다. 무언가 큰 사건이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건 보다는, 비슷한 양상의 감정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 나는 상담에 가야지- 맘 먹는다. 비슷한 양상의 문제를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반복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하나의 ‘크고 단단한 바위’에 짓눌린 듯한 질식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오늘의 상담에서는 나의 마음이 나도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풀어놓을 때마다 쏟는 에너지가 커 누구에게도 풀지 못할/않을 이야기들을 이곳에서는 풀어낼 수 있다. 나는 ‘좀더 심플한 사람이었더라면, 훨씬 더 유능한 사람이었더라면, 조금만 더 솔직 또는 용감한 사람이었더라면’ 과 같은 수많은 ‘If I~’ 가정법을 동원해 내가 겪을 수 있었던 다른 상황들을 상상한다.
가만히 듣던 선생님의 말씀.
“듣다 보니 참. (웃음) 선재님이 선재님이라서 하는 고민들이네요. 선재다움. 내 마음이 이렇게 생겨먹어서 비롯되는 일들. 내가 나답기에 평생을 시달리는 고민들이, 있죠.”
응? 약간은 허탈해지는 그 말에 따라 웃다가, 벅벅- 머리를 두어번 긁고 나니 참 그렇게 맞는 말일 수가 없다.
이렇게 생겨먹은, 내 마음-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하는 말이지만, 어쩐지 그 말에서 나의 마음과 나다움에 대한 긍정과 지지를 느낀다. 그래, 이 갈등들 속에서 주저 없이 한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애초에 나는 이 길까지 오지도 않았을/못했을 테지. 내가, 나다워서 생기는 이 고민들을 너무 골칫덩어리로만 보지는 말자. 이 고민과 갈등 자체가 내 삶에서 나답게 균형을 잡아가는 훈련, 나만의 길을 내는 과정일 지도 모르니까.
조금은 풀어진 눈빛으로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 하시며 메모패드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요. 고생하셨어요.”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 60분 세션 시간 안에 내 마음을 이렇게 잡아주신다. 일어서는 마음이 어쩐지 날아갈 듯 하다. 매 세션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이런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 다음 한 주를 살아갈 힘은 충분히 되어준다.
앞으로도 쉽진 않겠지만, 오늘은 우선 이거면 됐다- 햇빛을 쐬고 맛있는 콩국수를 먹고 산책을 하다 보면, 한 2주 정도는 가뿐히 버텨낼 힘이 생길 것도 같으니까.
상담을 시작한 나, 꾸준히 이곳을 찾아 내 이야기를 털고 쌓았던 나, 나를 지키려고 애쓰는 나, 칭찬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