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울상인 하루였다. 빵집이 갑자기 문을 닫아 아침을 못 먹어서 울상, 인테리어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여서 울상, 작업자님의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울상,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울상… 인테리어 작업은 두 달째 쉼 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다고는 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나타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으로 충전된 기력이 오전 중 다 소진되어 어느 순간에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날 밤, 지침과 고민과 불만과 자신 없음이 기어코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인테리어 작업 중 한 단계의 결과가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작업자 님은 사람이 참 좋고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모습이 명백히 보였기 때문에 이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현우에게 힘없이 마음을 꺼내놓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업자 님께 돈을 드리고 일을 맡긴 거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시 요구해 볼 수 있다고. 그런데 작업이 가능한 선을 넘었다면 작업자 님도 거절하실 테고, 그럼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 당연한 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내가 불만을 가졌던 많은 부분을 현우는 괜찮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미시적인 부분에 매몰되어 있고 의미 없는 구석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아쉬운 부분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우의 말을 듣고 머릿속은 더욱 꼬여버렸다. 일을 진행하기 전 이미 충분히 요구사항을 전달했는데 일을 다 끝내고 똑같은 요구사항을 다시 한번 전하는 것은 작업자 님을 너무 힘들게 할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보수하고 싶은 부분을 작업자 님께 말하지 않고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는 그 책임의 무게에 하루하루 짓눌려갔다. 타인과 함께 일을 할 때 반복되는 뻔한 나의 패턴. 타인의 마음을 어려워하며 일을 마음 편히 맡기지 못하고, 보수를 요청하지 못하고, 내가 무리해서 짊어지고 가는. 끝내 스스로 부여한 과도한 일에 지쳐 도망치고 마는… 이미 오래전 몇 차례 겪었던 일이라 알 수 있었다.
완벽주의, 라는 늪은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빠지는 늪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귀한 일이나, 하나의 일을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다 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변수와 실수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 완벽주의의 늪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건물 자체가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또 걱정은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부서지고, 새고, 떨어지고, 사라지면 어쩌지? 일어난 일, 일어날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는 우리의 진심과 돈을 쏟아부은 이 일에 잠식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건 흠을 찾아내는 나의 시선이었다. 어둠의 축축한 기운이 마음에 퍼지면 그 독성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난 무엇을 원하는 걸까?
울먹이며 현우에게 힘든 걸 토하고, 힘없이 이불 위에 누워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 달 전 흥미롭게 읽었던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꺼내들고 아무 쪽이나 펼쳐 읽었다. 마침 내가 펼친 부분은 돈, 완벽성,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미시적인 것에 매몰되어 거기에 중요성을 과하게 부여하면 세상을 움직이는 ‘균형력’이 작용하여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였다. 나의 경우로 생각해 보자면 하자 또는 불행처럼 보이는 파문이 일 때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여기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균형력이 작용해 내가 문제를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것보다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쪽이 쉽기 때문에 균형력은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어릴 적 했던 게임 ‘카트라이더’가 생각났다. 목표로 향하는 길이 아닌 엉뚱한 샛길로 질주하면 게임은 나의 카트를 붕 띄워서 이미 지나온 지점으로 되돌려놓았다. 다른 샛길을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 아무리 바동거려도 언제나 게임은 정해진 길 위에 카트를 되돌려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 나의 상황은, 내 갈 길로 되돌려놓으려는 균형력의 작용일까?
내가 원했던 것은 우리의 꿈을 담아낸 공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지, 완벽하게 매끈하고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사람, 상황, 사건 속에서 내가 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폐를 입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괴로워할 텐가. 남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나는 가장 편안한 현우에게 화를 낼 것이고 내가 원했던 우리의 행복은 서서히 희미해지겠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살면서 큰 벽에 부딪혀 막막할 때마다 우연히 다가온 책에서 방법을 찾곤 했기에 이번에도 삶이 건넨 선의의 도움을 기꺼이 받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다짐문을 작성한 뒤 일을 시작하기 전 읊조리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 내가 다 하려 하지 말고 맡기기.
- 맡기면 나의 기준을 최대한 소멸시키기.
- 맡기면 그 사람의 기준으로 일을 보기.
- 어떤 일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오면 메모장에 써놓고 멈추기.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현우와 함께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 안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되는 것에 마음을 쓰기.
- 가장 중요한 건 편안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
- 어떤 일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 나의 섬세한 눈썰미는 흠을 찾아내는 데 쓰기보단 감사한 것, 기쁜 것, 작고 예쁜 것을 알아차리는 데 쓰기.
완벽에 대한 미시적인 집착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다짐문을 웅얼거린 첫날부터 새로운 문제가 빙긋, 웃으며 나타났다. 새로 작업한 깨끗한 바닥에 못이 긁혀 흉한 자국이 길게 남았고, 누수가 있는 벽에서 마른 페인트가 과자 조각처럼 후드득 떨어진 것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래, 다짐문 6조항… 안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되는 것에 마음을 쓰기…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지만 바닥은 긁힌 대로 받아들이고, 떨어지는 페인트 조각은 다 떼어내고 다시 기초부터 꼼꼼하게 칠하기로 했다. 2주간 매일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뭔가를 떼어내고, 칠하고, 메꾸고, 갈아내기를 반복했다. 익숙하지 않은 육체노동에 몸이 아파 밤잠을 설치곤 했는데, 정말로 힘들었던 건 ‘이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더 망가지기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확실함이었다. 그렇다 해도 해볼 만큼 해보고 싶었기에 집착적인 눈썰미를 활용하여 직접 디테일을 손보았다. 나의 기준으로 보수 작업을 꿋꿋이 해나가며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완성시킨 뒤 아무리 애써도 사라지지 않는 티끌은 귀엽게 넘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금 가고, 으스러지는 건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라 생각하며. 매일같이 한계를 느낄 만큼 피곤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작업자 님들이 하시는 일을 해보면서 마음의 질펀한 늪 하나가 정리되었다. 내가 보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해주실 작업자 분도 있겠지만 우리의 작업자 님도 충분히 잘 해주셨다는 생각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따르는 인정은 가벼운 꽃향기를 풍겼다.
푸른 저녁 하얀 달이 떠오른 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의 약국 유리창에 멋진 글씨가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