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혼자 도착했더니, 가벼운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터틀넥프레스’에서 온 택배 상자였다. 마침 신간을 주문한 참이긴 한데 하루만에 도착할 수가 있나? 어리둥절하던 차 택배를 박박 뜯었더니 편지와 함께 책, 쿠키가 들어 있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선물로 보내주신 책이었다. 제목은 사업일기.
‘사업일기’는 보희님이 매해 운영기를 책으로 만드는 서점(이었던가?)을 보고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막 출판사를 시작하려던 시기의 고민들, 바쁘고 치열한 나날이 몸과 마음에 남긴 흔적들, 주변 사업하시는 분들께 받았던 조언에 나도 어렵지 않게 마음을 포갤 수 있었다. 무엇보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운영기를 기록해오셨다는 것, 책으로 엮을만큼의 기록이 남았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인 일이 아닌가. 우리도, 눈풀꽃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마침 1월에 서비스를 오픈했고, 우리는 아마 한해라고 부르는 것의 끝에 다다를 때마다, 1년치의 경험이 쌓여 있을 것이다. 쓰기만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의 글을 쓰려고 앉았다. 이 택배를 풀기 전 나는 올해의 바닥을 찍은 참이었다. 이상하게 바닥을 찍었다고 쓰려는데 “또” 바닥을 찍었다고 쓰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 느낌이 처음이 아니어서 였을까. ‘바닥’이라고 불리는 마음에 적당한 이름표를 붙여준다면, ‘절망’이라는 말로 바꿔쓸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찾아온 절망감이었다.
지난 달 투자사와 폐업을 논의하느라 세무를 신경쓰지 못하다가 예상치 못한 세금 폭격을 맞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도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센터가 오픈하기 전 매출이 일어났고 그 돈으로 예전 회사 정리할 돈을 겨우 마련했다. 그리고는 60만원이 넘는 전기세를 보고 한번 더 뜨악했다. 공사가 12월 중순에 끝나 말께에나 되어서야 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월 전기세는 얼마나 나올까 덜덜 떨었다. 눈풀꽃을 열고 이전보다 매출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매달 나가는 생활비, 센터운영비, 대출 이자, 관리비, 가스비는 센터를 운영하기 전보다 몇 배나 뛰었다. 통장을 잠시 거쳐가는 돈이었다. 우편함에서 새로운 고지서가 도착할 때마다 휘청거리는데, 또 무슨 고지서가 와 있었다.
“52만원 더 넣어야 된대.”
줌 연간 이용료와 잘못 결제된 스퀘어스페이스 이용료였다. 마지막 한방울. 똑. 넉다운이었다. 절망은 불안을 타고 가랑비에 옷 젖듯 슬며시 찾아왔다. 나는 오늘에서야 내가 최근 느끼고 있던 것이 절망감이라는 걸 알았다. 벽앞에 선 마음 말이다. 마음 건강 분야의 벽. 아무리 벽을 더듬어봐도, 앞으로도 영원히 문은 없을 것만 같은 마음.
나는 이런 마음이 찾아오면 영은과 함께 걸으러 나간다.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공원에 의존하며 걸었다. 겨울이라 잠자고 있는 금색 잔디를 밟을 때, 소의 등에 엎혀 있는 것 같아 숭고한 마음이 들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아직도 붙어 있는 열매들을 봤다. 독한 놈들. 플라타너스 나무의 한글 이름은 ‘양버즘나무’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이 수종에 애정이 없던 것이 확실하다. 서양에서 온, 껍질이 버즘 피듯이 너덜너덜 벗겨지는 나무라는 뜻이다. 가로수에 잘 쓰이는 ‘양버즘나무’는 잎이 시그니처다. 사람 얼굴보다 커서 가을이 오면 바닥을 온통 뒤덮어버린다. 그런데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이 오는 마당에 이 볼품은 없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동그란 열매들은 아직도 멀쩡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3월이 오는데도 한 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오나먼트처럼 처량하게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걷다가 갑자기 불이 붙어 영은과 별것 아닌 일로 실갱이를 벌였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불안을 전염시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 마음이 가장 힘들어지는 건 ‘그렇게 느낄 수 없을 때’라는 데에 확신을 얻었다. 우린 극도로 고통스러운 감정, 절망, 질책, 분노, 수치심, 죄책감, 불안과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요즘 우리의 절망하는 마음은, 흐를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 영은과 나의 관계성 속에서 우리는 쉽게 절망할 수 없었다. ‘다 때려 치우고 싶다’ 말하기가 힘들었다. 서로에게 늘 미안함이 있어서 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영은이가 힘들어할까봐. 영향을 받을까봐. 스트레스 받을까봐. 절망할까봐. 불안해할까봐. 우리가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일들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자책감을 갖는 것도, 더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뭐 하나 잘못된 게 있나?
다음 날 영은이 산책을 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어? 이거 그거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라타너스 열매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씨앗 뭉치였다. 민들레홀씨처럼 생겼지만, 좀더 노랗고 좀더 복실거리는 귀여운 씨앗들이 500개는 족히 뭉쳐 있어 열매처럼 보인 것이었다. 씨앗을 하나둘 뽑기 시작하니, 노란 뭉치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병아리같은 노란 털들이 주변에 흩날렸다. 놀랍도록 오래 매달릴 수 있었던 건 무척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래 매달린 덕에 따뜻한 봄이 올 때쯤 온곳에 흩날릴 수 있으리라.
나는 이렇게 마음 먹고 싶어졌다. 그래. 우리가 마음껏 절망해도 좋아. 절망해도 괜찮아. 절망스러운 마음은 잘못된 마음이 아니지.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잘못된 마음이 아니지.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느낄 수 있지. 떨어지는 날도 있지.
우리는 한겨울내내 독하게(누군가는 귀엽다고 할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나란히 매달려 있다가도, 결국은 바닥에 툭 떨어진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떨어진 정확한 그 지점에 심어진다. 다시 시작한다. 봄이 오고 있다.
영은은 나에게 카톡으로 이런 문장을 보내왔다.
"걱정마라.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열정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젊은 날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