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는 안쪽에서부터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가장 늦게 진화한 인간의 뇌로 겹겹이 쌓여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깊숙이에 위치한 파충류의 뇌만 켜진 채 모조리 꺼진다. 생명 유지에 가장 필수적인 기능만 빼고는 모두 셧다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파충류가 된다.
야생에서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을 때 파충류가 대처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싸우기, 2. 도망가기, 그리고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못한 채 3. 얼어붙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을 때 갑자기 분노 조절 버튼이 고장나 중요한 자리에서 일을 그르치고, 모르는 척 잠수타고, 침대 위에서 몇날며칠을 붙어있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아무리 이성을 붙들려고 해도 붙잡아 지지 않는 것은 파충류 탓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서 싸우고 도망가고 얼어붙는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인간의 문제를 파충류가 해결해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용기내 지난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협상의 테이블에 앉은 건 파충류가 아니라 인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쉽게 파충류가 되어버리는 나에게는 위기의 순간에 ‘인간의 뇌’를 켜는 버튼이 절실했다.
감정이 제멋대로 요동친 날에 우연히 제주도의 한 바닷가를 떠올렸다. 잠시 눈을 감고, 발이 닿지 않는 바다 한 중간에서 하늘을 보고 누워 쉬는 순간, 내 몸의 또렷한 기억 속으로 나를 내던졌다. 온몸에 닿아있는 적당히 차가운 바닷물, 입안의 짭짤하고 비릿한 맛, 수영복의 가장자리가 등의 한 중간, 양 어깨와 사타구니에 닿아있는 느낌. 바닷속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를 떠올리면 태양빛이 온몸을 내리쬐는 곳, 눈을 뜨면 저녁 6시의 수조처럼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이 선명해질수록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침착하게 나를 채웠다.
잔잔한 파도가 몸을 들어올렸다가 내려놓는 리듬은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리듬을 닮았다. 빈 공간으로 숨이 들어오면, 수영장과는 달리 소금기 가득한 바다가 몸을 더 가볍게 띄웠다. 숨이 나갈 때는 파도가 나를 사뿐히 내려놓아주는 것을 지켜봤다. 새로운 파도와 내가 만날 때마다 물이 몸을 찰박찰박 쳤다. 나를 지나쳐가는 수많은 파도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를 스쳐가는 느낌, 내가 아주, 아주 작은 존재라는 확신을 주는 이 느낌에 뿌리를 내렸다. 여기가 나의 버튼이었다.
몸의 기억에는 강렬한 힘이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진실에서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어떤 날은 기억속으로 질질 끌려가기도, 다른 날에는 튕겨져 나가기도 했지만, 평화롭고 자유로웠던 순간은 펑하고 사라지거나 시들지는 않았다. 틀림없이 내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사라질까, 날아갈까 다시 더듬더듬 짚어본다.
정말이지, 이 버튼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