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가가 따로 있나
하루는 나를 식사 자리에서 본 어른께 '새 모이만큼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에이, 진짜 새 모이만큼 먹는 건 우리 엄마, 아빠였다. 우리 집은 매일 쌀 한 컵으로 4명이 식사할만큼 소식하는 편인데, 치킨 한 마리, 피자 한 판도 넷이서 다 못 먹는다. 음식이 남으면 잔반을 처리할 사람은 그나마 잘 먹는 오빠밖에 없어서, 오빠는 우리 집안의 식사량이 기형적이라고 투덜거렸다. 다 잘 못 먹는(?) 환경 속에서 자란 나는 이게 우리 집안 가풍 내지는 유전인줄 알았다.
먹고 싶은 만큼 입에 모두 집어넣고 나면 속이 꽤 불편했기 때문에 소화될 만큼만 먹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부족한 열량은 주로 젤리나 초콜릿, 빵 같은 달달한 간식으로 메웠다. 이 '소화가 안 되어서 단 것으로 연명하는 병'은 아주 어린 시절에 시작됐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증상이 더 심해져서 밥 짓는 냄새를 맡는 게 역할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밥 대신 단 것만 먹다보니 변비가 심해져서 배에 신호가 오면 손을 들고 수업 중간에 뛰쳐나갔다. 여러 선생님 가운데서도 근현대사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 가야 한다는 이상한 지론을 갖고 있었는데, 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별말없이 지나간 적도 있다.
나중에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동료가 점심으로 죽을 먹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때까지 한번도 죽이라는 메뉴를 사먹어본 적이 없어서 꽤 당황스러웠지만, 먹어보니 속이 편안한 게 만족스러웠다. 이후로도 회사 구내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밥을 마다하고, 굳이 나와서 죽을 사 먹었다.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몇 번이고 죽을 먹으러 갔다. 차차 인턴들에게로 죽 문화가 전파됐다. 우리는 모두 어렸고, 사회 생활에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죽을 찾기 시작할 때였던가. 어쨌든 그때만 해도 나는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을 줄 거라면 죽집 쿠폰을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은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을 본능적으로 찾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광화문의 프랜차이즈 죽집이 망할 일은 크게 없을 듯 하다.)
요즘에는 죽을 안 찾게 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밥이나 빵으로 모두 챙겨먹고, 그 사이 사이에 간식까지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다니, 기적이 따로 있나. 평소에 먹던 것보다 거의 2배를 먹게 되었고, 자연히 단 것을 주식으로 먹는 일이 드물어졌다. 밥을 먹고는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충분히 걸었다. 그만큼은 더 건강해졌다. 한동안은 이런 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밥을 먹는 느낌이구나, 싶도록 낯설었다. 수년, 아니 수십년 만에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소식하는 특성에 대해서 참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싶다. (내시경해봐도 별탈 없으면 장땡인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그때 피는 골격근으로 몰린다고 한다. 도망가든 쌈박질을 하든 몸이 우리가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두는 셈이다.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 어느 한쪽에 집중한다는 건 희생되는 파트가 있다는 뜻이다. 이때는 대표적으로 소화기의 기능이 제한되는데, 그건 몸이 '지금은 한가하게 소화시키고 있을 때가 아니야!' 라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한 걸까. 원래라면 집에 돌아와 편안하게 쉬면 소화가 잘 돼야 하는데,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활성화된 채로 살아가다보니 소화 안 되는 상태가 디폴트값이 되어버렸나 보다.
편안함을 잊은 사람들
얼마 전 D가 지나가다 들른 구립 시설에서 스트레스 검사를 무료로 해주더라며 나에게도 받아보라고 권했다. 결과를 받아보니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은 상태라고 나왔다며 웃었다. 웃을 일인가, 하면서도 희미하게 따라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가 하면서 자세히 살펴본 D의 몸은 '나 스트레스 받고 있어요'하고 외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숨이 들어가고 나갈 때 갈비뼈의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횡격막 호흡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숨이 확연히 짧았다. 전체적으로 상부흉곽이 경직되어 있고, 나타나야 할 건강한 골반의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는 걸 인지하는데 스트레스 검사가 필요한 것이 안타까웠다.
친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 6개월 전에 회사고 뭐고 다 못하겠다고 나자빠지기 직전에 일종의 쓰리잡을 뛰고 있었다. 위기감 속에서 겨우 하루 할 일을 지워가며 지내고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아팠고, 통증의 주기가 짧아지니 두려워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통증을 참으며 살아가야 할까? 그때부터는 걱정과 불안으로 신체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이 됐다. 마음이 몸으로, 몸이 마음으로 고통을 옮기며 눈덩이 불듯 문제가 커지고 나서야, 내가 오래도록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 몸의 신호음을 알아채지 못한 결과였다.
일을 쉬기 시작했지만 아직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위험한 때임이 틀림없다) 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하겠다며 일을 벌이고 다녔다. 그때 B는 내게 '이제껏 나를 잘 돌보고 있다고 과신한 게 아닌지' 물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했다. 그 말을 듣고는 집에 와 홀로 눈물을 훔쳤더랬다. 나 같이 형편없는 명상 선생이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이어진 탓이었다. 마음챙김 명상은 감각을 활용하는 기술이고, 몸을 느끼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다. 그런데 나는 왜 관리에 실패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답을 알 수 없었고, 이따금 그 질문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느즈막히 되돌아보면, 나에게는 상태 자체에 대한 알아차림은 있었어도 그 상태가 어떤 상태라고 이름 붙일 어떤 기준점이 없었다. 황당하게도 편안한 상태가 뭔지 잊었던 것이다. 힘든 상태를 힘든 상태로 라벨링하자니, 지난 몇 년의 시간을 힘든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스트레스 상태'라고 붙이기에는 남들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건 핑계일까. 전부 착각이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충분히 지속되고 나서야 이제껏 스트레스의 기준점 자체가 한껏 높아져 있었다는 걸 명징하게 느꼈다.
명상과 요가 수행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렬한 매력을 느꼈던 걸 생각해보면, 이 일은 늘 나의 취약성과 맞붙어 있었다. 그 기술들을 알게 되어서 건강이 무너지는 것을 몇 년 정도는 연기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곡차곡 누적된 불균형은 일과 일 사이 잠깐의 명상으로 다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외부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통증 때문에 할 수 있는 활동에 제약이 생기니, 별 수 없이 건강(?)해지는 게 아닌가. 걸을 때 통증이 제일 적으니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오래 걸었다. 할 일이 없으니 종종 산에도 갔다. 산에 가니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주황색 배에 갈색 날새를 가진 새들이가 보였다. 새로운 감각적 경험들은 내게 사람이 원래 살아야 마땅한 삶 혹은 상태로 느껴졌다.
한동안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양립할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회사에서 8-9시간을 보내면서 하루 1시간은 운동하고, 충분히 사유하고, 주말에는 문화 생활을 하고, 볕도 쬐고, 밥도 해먹고, 는 최소한 내게는 불가능이었다. 인간의 몸에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산책하기, 건강한 음식 천천히 먹기, 볕 쬐기, 자연을 가까이 하기, 명상하고 사유하기, 자기 전 일 내려놓기처럼 뻔하고 좋은 방법들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는 내 삶 전반을 뒤집어 엎을 각오가 필요했다. 그런 각오가 없어서 나는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억지로 한 인간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면서 일상을 다시 세우고 나니 기사에서 약속한 것처럼 '원래의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돌아갔다.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맑은 시냇물에 헹궈진 것 같았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딘가에서 '둔근 기억 상실증'이라는 단어를 보고 제대로 읽은 것인지 다시 확인한 적이 있다. 찾아보니 말 그대로 '엉덩이 근육을 어떻게 쓰는지 까먹는 병'이었다. 사람의 몸에는 기억이 있어서, 걸을 때 엉덩이 근육 쓰는 것을 기억하고, 자전거 타는 것을 기억하고, 숨 쉬는 것을 기억한다. 아쉽게도 몸의 기억은 쉽게 날아가기도 해서 원래의 건강한 움직임을 홀랑 까먹고는 다른 근육을 끌어다 쓰고, 그 불편한 상태에 쉽게 적응해버린다. 적응한 그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왜곡해 머리에 입력한다. 문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를 까먹고 나면 문제 인식부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약해졌던 부위가 소리 없이 계속 약해진다. 문제가 되기 전까지 말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걸 삶 기억 상실증이라 해야 하나. 편안한지 오래 돼서 편안한 게 뭔지 까맣게 잊어버린 걸을 보면 편안함 기억 상실증이라 해야 하나. 늘 편안할 수는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건강한 상태라고 라벨링할 어떤 기준점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머리로 아는 기준점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되는 기준점 말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은 없겠지만, 스트레스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상태를 우리가 또렷이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