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웬수 같은 인스타그램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의미있는 연결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크게 마음을 열어두지는 않는다.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 종종 있을지는 몰라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고, 의미있는 연결이 이뤄지는 관계라면 두 눈을 마주보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따로 연락을 해서든, 그 사람이 따로 연락을 해서든 말이다. (전화를 안 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진짜 중요한 연락이라면 문자가 오든, 카톡이 오든 할 거라고 믿고 있다. ㅋㅋㅋ 엄마가 욕하는 소리가 들려서 잠시 웃었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을 안 할 수 있나. 인스타그램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사실 생존의 장이다. 시장에서 나의 존재를 알리고, 나를 팔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팔지는 않더라도,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알리는 좌표는 필요하다. 내가 나를 팔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을 안 할 수는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인스타그램의 용도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사람들과 의미있게 연결되는 장소라기 보다는, 나를 팔고 알리는 어떤 좌판대로 삼기로 했다. 애초에 인스타그램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려는 동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사람과의 연결을 얻으려면, 아마도 많은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나도 팔로우를 해야겠고, 사람들의 피드도 봐야 겠고, 스토리도 보고 반응도 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 소중한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을 조금은 봐야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만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정보를 얻으려는 동기도 내려놓게 되었다. 어차피 나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리는 최신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취득할만한 안목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판단해서다. 내 관심사는 심리, 신경생리, 콘텐츠, 작은 사업, 환경인데, 이러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는 인스타그램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이 정보를 큐레이션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 안목을 갖고 있다면 굳이 큐레이션된 정보를 인스타그램에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포기하는 것은 맛집이나 카페, 숙박에 대한 정보인데, 이건 주변 사람들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기로 한다.
인스타그램 운영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고민해봤는데, 아무리 시장 좌판대 같은 계정이라고 하더라도 백 퍼센트 오피셜한 콘텐츠로만 채우지는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친한 동료인 파이가 말하길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가 일제히 스토리로 올라갔을 때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등어를 팔고 싶어도 계속 고등어를 들이밀며 냄새를 맡게 하는 건 고문이지. 사람이 시장에 오면 일상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단골 되고, 친해지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상의 부분들을 올리기로 했다. 내가 드러내고 싶은 범위까지만.
그래도 피드나 스토리를 보면 홍보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 자체가 홍보를 위해서라고 하면 너무 약은 사람 같지만, 사실이다. (이렇게 쉽게 인정해버려도 될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은근히 홍보하지는 않는다. 홍보할 때는 대놓고 홍보한다고 말하려고 한다. 애초에 은근히 홍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세상이다. 다 알아챈다. 우리가 십년 간 온라인 마케팅을 당해왔는데, 홍보를 홍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못 알아챌소냐. 게다가 홍보한다고 말하고 팔아주세요! 하면 조금 듣기 싫어도 봐주게 되는 측면이 있다.
몇몇 규칙이 더 있는데 고기 굽는 장면이나, 비싼 오마카세 혹은 미슐랭 디너 코스를 먹는 것, 아주 비싼 숙소에 묵는 것은 애초에 잘 하지도 않고 잘 할 수도 없지만 그런 경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올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뜻하게 않게 불편감을 자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완벽해보이는 사진은 가급적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웃긴 일인데, 완벽해보이는 사진과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세상 겸허하고(?) 없어 보이고(?) 힘든 노동이다. 그 과정의 약간 엉성함이나 소박함, 수수함 같은 것들을 가능한 같이 올리려고 노력한다. 내 나름의 방법이다. 완벽한 것보다 속이지 않고 진실한 것, 엉성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야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디지털(옛날말?) 세상을 살기 위해 세워둔 나름의 철칙이 오늘도 나를 지켜준다.
2 - 시기, 질투와 비교하는 마음
인스타그램은 진정 '시기심의 장'이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역시 나는 최고야. 나는 잘 살고 있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우리 모두의 생존의 장이다보니, 좋은 부분을 편집해서 올린다. 굳이 썩은 고등어를 파는 것을 올릴 필요는 없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면 보낼수록 '역시 부족한가. 역시 더 해야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시기심은 주로 내가 느끼기에 나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사람이 나보다 훨씬 인정을 받는 것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시기심'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안 드는 것이다. 슬픔은 슬픔이고, 우울은 우울이고, 불안은 불안인데 시기심은 시기심이 아니다. 다른 새로운 (비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들이 생긴다. 설마 내가 갖고 있는 마음 때문이라고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에 '이상하게 그냥 싫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대개 시기심이었던 것 같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부럽고,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인지 치료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을 다루는데, 하나는 그 생각에서 빠져 있는 여러 다른 상황들을 고려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생각의 내용적 접근이다. 또 하나는 그 생각 안에 숨어 있는 욕구 자체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럼 어때!'해버리고 마는 거다.
이걸 시기심에 적용해본다면, 하나는 '그 사람의 빛나는 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전체를 봤다고 생각하지는 마. 너도 너 나름대로 빛나는 면이, 그리고 평범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한 면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 걸.'이겠고, 또 하나는 '그래,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참 인정받고 사랑받는 구나! 나보다 더 알아주네! 근데 그래서 뭐! 그러면 좀 어때?' 해버리고 만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가 조금 더 잘 먹히는 편이다.
시기심을 시기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계속 그 사람을 미워하고 혼자서는 괴로워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더라.
3 - 옷까지 모시고 살고 싶지는 않다
춘천 썸원스페이지에 다녀왔다. 사장님이 정말 훌륭한 분이었고, 숙소도 참 정갈하고 따스했다. 북스테이인만큼 방마다 에세이집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장기하의 에세이집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새벽에 혼자 읽었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옷까지 모시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내용이었다.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옷은 가급적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드라이해야 하는 옷조차도 물빨래를 한다에 가깝지만, 정말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걸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자연히 해야할 걸 하게 된다. 그래서 덜어내는 건 큰 기쁨이다. 음악 작업을 할 때도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가 어떤 사운드를 뺐을 때 그 전과의 차이가 거의 없을 때란다. 그만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는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 신경 쓴다고 했다.
나도 언제부턴가 수업할 때 불필요한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 거의 만트라가 되었다. 다른 규칙은 모두 구부리더라도, 이 규칙을 지키면 좋은 수업이 됐다. 명상 안내 가이드에서도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명상 콘텐츠를 녹음할 때도 주로 매달리는 것은 빼는 것이지 채우는 것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꾸 채우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나에게 필요한가?'했을 때 필요 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 해도 짐일뿐이다. 모시고 살 것들을 줄이고 또 줄이자. 그게 아니더라도 신경 쓸 게 많다.
4-할머니가 되어가는 느낌
여행하며 문득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올랐다. 에세이는 떠올랐을 때 써야 잘 써지고, 그 느낌 그대로 잘 담긴다. 참 아쉽게도 조금 쓰다 포기했다. 평소 사용하는 책상을 벗어나서 컴퓨터를 하면 곧바로 목이 다시 아파왔다. 내가 원하는 때 글을 쓸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통증으로 사소한 제약이 생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의 유한함을 정면으로 보게 되었나 보다. 어떤 때에는 모른 척 슥 지나가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 묻어두고 싶기도 한데, 나는 그렇게 안 되는 모양이다.
아프기 때문에 내 나이 답지 않게 얻게 되는 것도 있다. 다짜고짜 달려들지 않는 지혜 말이다. 내 분수를 알게 되어서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나를 아낀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채워도 이미 삶을 충분히 복잡하고, 시간과 에너지는 부족하다. 할머니가 되어가는 느낌을 반겨야 할지, 서글퍼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