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충치는 치료하지 않고 지켜보는 편이 일반적입니다. 6개월 뒤에 다시 보죠."
검진을 마친 의사 선생님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 뒤로 드르륵 멀어지며 말했다. "충치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이 더 멀어지기 전에 황급히 몸을 일으킨 내가 팔자 눈썹을 하고 묻자, 선생님은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양치를 잘 하셔야죠." 나는 굴하지 않고 "어떻게 하는 게 양치를 잘 하는 건가요?" 하고 다시 한 번 질문했고, 선생님은 이걸 말해줘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더니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뭘 먹을 때마다 하는 게 양치의 기본입니다."
"그건 너무 양치 중심적 삶 아니야?"
얘기를 들은 친구 J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고, 옆에 있던 다른 친구 Y는 나처럼 충치로 골치를 앓고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양치만 해야겠는데..."라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며칠 전에는 육아휴직 중인 친구 H를 만났다. 결혼이나 육아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아이와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모양이 궁금해서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아이는 너한테 어떤 존재야?"
"행복이 형태를 띠고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
"엄청 소중해? 부모님처럼?"
"부모님한테 느끼는 감정이랑은 달라."
"결혼한 삶은 어떤 삶이야?"
"결혼은 가족이 생기는 일이지. 그런데 내 가족보다 남편의 가족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삶이야."
"흐음..."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삶을 상상해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나 이제 복직이 정말 얼마 안 남은 거 있지. 추석 지나고 어영부영하다가 찬바람 불면 회사 가야해. 시간이 너무 빨라." H는 그러더니 불쑥 "아아, 나 이제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어." 하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복직하면 하게 될 일에 예전만큼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전부터 따로 있었으며, 그 일에 대한 마음이 갈수록 더 커진다고 했다. H가 그 일을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옆에서 내내 보았기에 나는 H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H는 자신을 무명 가수에 비유했다.
"음반 내겠다, 내겠다 하곤 몇 년째 못 내고 있는 무명 가수가 된 것 같아."
"싱글이라도 얼른 내야 하는 거 아냐? 흐흐"
"그러니까. 흐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낸지 1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글 한 편 쓰지 못한 처지였으므로 우리는 얼마간 무명 가수의 심정이 되어 함께 흐흐 웃었다.
“최근에 주방 식탁을 안방으로 들였어. 아이가 생기고 작업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거든. 책상이 생기니까 앉아서 뭐라도 하게 되더라.”
주방 식탁, 아니 안방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짬짬이 뭐라도 하는 H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 문득 실감했다. 한 사람의 삶의 중심이라는 건 겉으로 보여지는 생활과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삶의 중심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삶에 중심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격랑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을 꿈꾼다.
나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고 싶다.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의 이해당사자가 되어 그 일의 세부를 알게 되고, 그걸 알게 된 대가로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으면 좋겠다. 나는 온갖 인간 군상들과 얽히고 섥혀 어떤 일은 수습하고 어떤 일은 벌이며 정신 없이 산다. 그러는 동안 청춘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돌연 세상에 미련이 없어진 나는 아는 이 없는 작은 동네에 숨어들어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과거를 숨기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삶을 꾸려가는데, 이따금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이면 수상한 사람이 문을 두드린다. 그는 빗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와 내게 조언을 구한다.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함께 팀을 이루어 일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며,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한사코 거절한다(어디선가 풍기는 삼류 영화 냄새).
안타깝게도 현실의 나는 누구보다 평범해서 아무도 나를 엄청난 사건에 끼워주지 않는다. 배달 기사님이 아닌 이상 비 오는 날 찾아와 문 열어 달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날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1분의 오차도 없이 정시에 퇴근하며, 카페 한두 곳을 정해놓고 매일 같이 들르면서도 지겨운 줄을 모른다.
판에 박힌 듯 굴러가는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바뀌는 거라곤 내 손에 들린 책과 내가 쓰는 문장 뿐이므로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 노선을 도는 내가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어느덧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읽고 쓰는 시간 때문인 셈이다. 그 시간은 밀물처럼, 때로는 쓰나미처럼 나를 덮치고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을 이리저리 조금씩 바꿔놓은 뒤 빠져나간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 읽고 쓰는 시간은 타인이 보기엔 더없이 정적이겠지만 나에겐 격랑이고 파란만장이다. 내 삶은 읽고 쓰는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 감상에 빠져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으로 스스로의 삶에 감동하고 있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지이잉 하고 울렸다.
“치과 검진일이 되었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연락 한 번 주세요~”
에잇.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모처럼 찾아온 감동을 다시 이어가려는데 또 한 번 지이잉 하고 휴대폰이 울린다.
"2023년 09월 수도요금 안내. 당월 청구금액 : XX,XXX원, 납부기한 : XXXX년 XX월 XX일."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나는 판에 박힌 삶으로 돌아온다. 격랑 같은 삶 말고, 격랑처럼 밀려드는 지하철 인파를 뚫고 출퇴근하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 치과에 가는 삶이다. 또한 이번 달 수도요금은 얼마가 나왔나, 가자미눈을 하고 지난달 요금과 비교하는 삶이며, 알고보니 계량기가 고장나서 터무니없는 금액이 청구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계량기에 괸해선 아는 게 없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기에 요금이 청구될 때만 간헐적으로 벌벌 떠는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