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너도 가볼래?”
“음.. 그럴까.”
내 러닝 실력으로 본격적인 러닝 모임에 간다는 건 이제껏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인데, 이날은 왜인지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길을 걷다 영은이 ‘지금이다!’하고 갑자기 신호를 보냈을 때 일사불란하게 미리 준비해 둔 ‘신청합니다!’라는 문구를 댓글창에 복사, 붙여넣기 했다. 러닝 공지 포스팅이 올라오면 최대한 빠르게 ‘신청합니다!’하고 댓글을 다는 것이 신청 방법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이 러닝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같이 뛰기 위해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들락날락하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중요한 단서를 흘려보냈을까.
다음 날 당산으로 향했다. 당산은 여전했다. 군산 오징어 집도, 미나리 삼겹살집도, 스타벅스도 5년 전 그대로였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스타벅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한 구석에 ‘와우산’이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입고 러닝화를 조여 매는 여자를 봤다. 그 여자가 자리를 뜨고 얼마 후에 우리도 곧 집결지를 찾아나섰다.
어쩜, 집결지도 하필 주차장이람. 넓은 주차장은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큰 SUV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차를 중심으로 검은 옷에 짧은 러닝 쇼츠를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SUV 트렁크에는 멤버들의 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침 차에서 비트가 강한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까만 옷을 위아래로 입은 사람들이 몸을 푸는 장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체감상 영화 <8 마일즈>의 한 장면 같았다.
‘쿵- 쿵- 영어!@$#$’
바로 앞에 서 있던 스태프가 스르륵 내 앞에 나타났다.
“체크인 도와드릴게요.”
“음..”
“인스타그램 아이디요.”
“아마존…”
이름도 아니고, 닉네임도 아니고,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체크인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이 도착했는데, 아무도 체크인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번 온 사람들은 자동으로 알아보고 체크하는 모양이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거의 4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주차장에 모였다.
“자, 이제 한쪽으로 모여서 몸을 풀게요. 오늘은 6.5킬로 정도를 뛸 예정입니다.”
‘뭐라고? 제길. 도망가야겠군.’ 옆에서는 이런 소리도 들렸다.
“형, 살 많이 빠지셨네요.” “요즘 춘천 (마라톤) 준비한다고 훈련하고 있어서 살이 좀 빠졌어.”
춘천 마라톤이 얼마 안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하필 이 시기에 러닝 모임에 오다니.
“빠져나가서 한강도 뛸 거예요. 자, 이제 발목부터 돌립니다. 하나, 둘-“
도망갈 궁리에 빠져 있는데, 아무리 짱돌을 굴려봐도 이미 때는 늦었다. 모든 짐은 저 차의 트렁크에 넣었고, 길을 찾을 핸드폰도, 도망가기 위한(?) 교통 카드도 없었다. 이제는 뛰는 수밖에. 교감신경계가 날뛰는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솔직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양옆을 둘러볼 새도 없이 경주마처럼 달렸다. 중간에 10차선을 가로지르는 넓은 횡단보도를 두고 머뭇대고 있는데, 15초인가 남은 상태에서 ‘달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전속력으로 달려서 길을 건너지 않았다면 조금 더 뛸 수 있었을 텐데.
그제야 나와 영은이 무리의 꼬리에서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열심히 뛴다고 뛰는데도 도저히 저 앞에 뛰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바로 뒤에서는 또 ‘쿵쿵’하는 힙합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스피커를 들고 뛰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우리를 스쳐 지나갈 거로 생각했는데, 벌써 200미터는 함께 뛰고 있는 듯했다.
‘뭐지?’
우리의 페이스 조절을 해주려고 뒤에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자비한 친절이라니. 점점 발을 지면에서 떼는 게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늦췄더니,
“벌써 퍼지면 안 돼요! 뛰어야 해요!”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삽시간에 우리를 제치고 지나갔다. 음악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녕….’
서서히 속도가 느려졌다.
“잠깐 앉을래?”
옆에서 같이 달리던 영은이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듯 어지러웠다. 의자를 찾을 여유도 없어서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하. 후. 하. 횡격막 호흡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입으로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나의 첫 러닝 모임은 암담했다. 혼자 달리는 만도 못 한 함께 달리기였다. 2킬로도 채 못 채우고 체력은 바닥이 났고, 입에서는 단내가 날 만큼 오버페이스였던 데다, 달리는 마음에는 조금의 여유도, 즐거움도 없었다.
당산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동안 영은이 건넨 ABC 초콜릿을 천천히 입에서 녹여 먹었다. 갑자기 오른 당 때문인지는 몰라도 낯선 이들의 낯선 바이브로 가득한 러닝 모임에 와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달리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지 않나.
'혼자서라면 내가 이 정도 속도로 달렸을까?'
절대 이런 속도로 뛰었을리 없다. 사실 러닝 크루에서 달리는 건 내가 일반적으로 달리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러닝 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에 가깝다. 객기로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을 굳이 하니까 의외의 좋은 점도 함께 따라왔다. 혼자서라면 낼 수 없던 속도를 경험한 덕분에, 러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낯설고도 신기한 에너지를 엿본 덕분에 함께 즐겁게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들고 싶어졌다. 지지부진한 나의 러닝에도 목표가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