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지키고 있는 작은 규칙이 있다. SNS에 고기를 찍어서 올리지 않기. 부끄럽게도 아직 비건을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고기 먹는 것을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또 하나의 작은 규칙을 마련했다. SNS에 얼마나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올리지 않기. 몇 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고 며칠 간 야근을 연이어 했으며,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결과를 내어 무척 뿌듯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일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동시에, 몸과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규칙을 만들고 혼자만의 시위를 단행하게 된 이유는 가까운 친구들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방송국 PD 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프로그램에 들어갈 때마다 편집실에서 밤을 새며 일하고 식사 때마다 편집실로 가져다주는 플라스틱에 담긴 배달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그런 친구를 억지로 불러내 저녁 7시에 밥을 함께 먹었는데 9시에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봐야했다. 늦었는데 지금 또 들어가야 돼? 묻자 다들 아직 회사에 있거든 하고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 친구가 어두운 편집실에서 나올 수 있었던 날은 허리 디스크가 터진 (말 그대로 진짜 터져서) 날이었다. 한 달 간 병가를 낸 후 다시 편집실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몇 주 전에 다시 만난 친구는 계속 미루던 테니스 수업에 여전히 등록하지 못했고 편집실에서 화장실로 가는 복도의 통창으로 보는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테헤란로 오피스텔에 살며 역삼역 부근의 회사에 다니는 다른 친구는 1년 전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아직 5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닌데,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 팀장을 맡게 되면서 두 배는 더 바빠진 듯 보였다. 나는 오늘도 친구가 간다고 했던 헬스장에는 정말로 가고 있는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게 맞는지 조마조마하게 소식을 기다린다.
꼭 가보고 싶었던 쿠키 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갔다.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단골 손님들로 북적였다. “사장님 꼭 회복해서 쿠키 다시 구워주셔야 해요.” 사장님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황이라고 했다. 처음 본 사장님 앞에서 조금 울어버렸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얼굴이었다.
어쩌다가 일이 우리를 이렇게 집어 삼켜도 괜찮은 세상이 되었을까. 회사에서 두통을 호소하자 대표가 직접 찾아와서 진통제를 주며 ‘타이레놀은 하루 8알까지 괜찮대요’ 라고 말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어느 한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업무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하에 심부름을 해주는 부서를 따로 마련했다고 한다. 부모의 생신에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식당을 대신 찾아 예약을 해주거나 휴가지에서의 여행 계획을 대신 세워주는 것들을 담당하는 식이다. 이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댓글을 보면서 참담하다고 느끼는 내 감정이 혹시 틀린 건지 의심이 들었다. 일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정말 좋은 일인가? 정말로?
“영은 요새 본업이 운동이에요?”
러닝, 요가, 수영, 등산, … 얼마나 자주 움직이고, 오르고, 땀을 흘리고, 볕을 쬐는지 SNS에 주구장창 올리기 시작하자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매주 3개의 강의를 준비하고, 정기 미팅을 하고, 마침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추가 업무까지 늘어났지만 나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에 날이 좋으니 다음에 같이 홍제천을 뛰자고 답장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00세까지 살기 : 블루존의 비밀>을 재미있게 봤다. 전 세계의 장수 마을을 찾아다니며 그 비결을 취재해 공통점을 발견하는 4부작 다큐멘터리다.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필요한 네 가지 공통점이 인생을 가치 있게 해주는 점과 같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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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 naturally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걷고 계단을 오르며 기계 대신 손으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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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wisely 정제하지 않은 채식을 먹기
통곡물, 채소, 덩이줄기, 견과류, 와인 등에 감사함을 표하고 천천히 적당량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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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 소통하기
평생 돈독하게 지내는 가족이나 친구 그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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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 a good outlook on life 올바른 인생관을 갖기
스트레스 관리 루틴이 있고 매일 아침 일어날 이유가 분명하다.
(역시나 아무도 모르지만) SNS 업로드 규칙을 좀더 다듬어 보기로 한다. 말을 하기 전에 진실한가? 필요한가? 친절한가? 세 가지를 생각하고 말을 해야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인 일인지? 천천히 즐겁게 먹은 음식인지? 함께 사랑을 나눈 시간인지? 와 같은 것들을 세부적으로 추가해본다. 다음 번에 친구를 만난다면 일에 대한 소식을 묻기 전에 최근에는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