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롭게 다니게 된 한 카페는 그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 출입구 오른편에 걸린 열쇠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 좌회전, 다시 한 번 좌회전을 하면 어느 건물의 뒷마당이 나오고,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간 후 반층을 걸어 올라가면 화장실이 등장한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뒷마당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신전에 입장할 때처럼 두 기둥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데, 평소엔 괜찮지만 비가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나는 비 맞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우산을 펼친 채로는 폭이 겨우 60cm가 될까 말까 하는 되는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얘기를 듣던 친구가 물었다.
"기둥을 세우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었고, 그래서 우산을 쓴 채로 지나가야 하는 경우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거겠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이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허점을, 인간적인 결함을 상정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인간이 이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악당이 의외로 허술하면 뭇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결함이 사랑의 요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흠..." 나는 그 같은 사실에 관해 곰곰 생각하다가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는 상대의 결함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자 친구는 "그러면 결함 없는 사람은 누구한테 사랑 받지?"라고 받아쳤고, "세상에 결함 없는 사람은 없어"라고 내가 다시 받아치자 친구가 날 빤히 보며 말했다.
"증거 있어?"
꿈에서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비밀에 의하면, 결함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실은 결함 있는 어떤 사람이 지어낸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한다.
그들, 결함 있는 인간들은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타인의 결함을 무단으로 상정한 후 멋대로 남을 연민했다.
"사실 결함 없는 사람은 존재한다네."
꿈에서 지나가던 노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결함 없는 사람은 없다는 소문을 처음 만든 사람."
그가 젊었을 때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완벽해서 결함이 없었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나는 나를 견딜 수 없었어. 내 결함이 꼴 보기 싫어진 거야."
노인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듯 괴로워했다.
"그분이랑 연락은 하세요?"
내가 묻자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다 지난 일일세."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세상의 서쪽 끝으로 가면 섬이 하나 나오는데, 연중 온화한 기후에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완벽한 곳으로 그 섬처럼 완벽한 인간들이 그곳에 모여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도 거기에 살고 있지."
멀리 서쪽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녀처럼 결함 없는 인간들은 결함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 당했어. 결함 있는 인간은 완벽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해. 결함 투성이인 자신이 싫어지게 되니까. 결국 자신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그들을 추방시켰지."
말을 마친 노인은 허공을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무언가에 가격 당한 것처럼 일순 얼굴이 일그러졌고,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진실이 주는 고통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이르듯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는 내게 사랑받기 위해 심지어 결함을 연기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그 섬에 가고 싶어졌다. 딱 한 번만이라도 완벽한 인간을 만나보고 싶었다.
"섬에 가는 법을 알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
노인이 나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봤다.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불행해질 뿐이니까."
그러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탄식하며 멀어졌다.
"아아, 결함 있는 인간은 끝끝내 자신의 결함밖에 사랑하지 못하리!"
어떤 비밀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