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여름에 가면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펼쳐볼 기회가 없다. 책장에 꽂힌 책 제목들을 구경하다 보면 황홀해져서 무슨 책부터 펼쳐볼지 가슴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그날 눈에 들어온 책은 이거였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아파서 미안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2019년에 우울증으로 3개월간 업무를 하지 못했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감퇴해서 단순한 업무도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업무를 완전히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함께 일하는 동료가 두 배의 일을 하게 되었고 나는 정말 미안했다.
아파서 미안해했던 동료도 떠올랐다. 작년에 우리는 서비스 정식 오픈을 몇 주 앞두고 기한 없이 오픈을 미루기로 했다. 동료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근골격계 질환 때문에 10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동료는 끝까지 서비스를 오픈하길 원했다. 자신이 아픈 것 때문에 미뤄지는 게 모두에게 매우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깊은 대화를 통해 우리 팀은 모두가 이 일을 ‘함께 오래’ 하길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는 먼 길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잠시 쉬면서, 지치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는 적절한 속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합의하여 결정한 일임에도 동료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파서 미안했던 기억만 있어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궁금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아픔을 대했던 나의 태도가 떠올라 조금 울었다. 먼저는 아픈 나를 미워했던 기억 때문에 울었다. 아픈 이후부터 언제나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픈 상태는 떼어버려야 하는 혹 같았다. 팀에는 민폐였고, 사회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청년이었고, 인간으로서는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완치(完治)해서 복귀(復歸)할 날만을 꿈꿨다. ‘아픈 나’는 나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아픈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고 나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아픈 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에게 무심코 했던 말도 떠올랐다. 걱정한답시고 “어떻게 몸을 관리했길래 이렇게 됐냐.”고 말했다. 그 말은 아플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모든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힐난이었다. 아픈 친구를 순식간에 아플 수 없는 사람, 아프면 안 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친구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늦은 반성을 하며 울었다.
그동안 아픈 나와 너를 대하는 언어가 부족했음을 실감했다. 건강해야 해, 건강이 최고야, 건강 잃으면 다 잃는 거야. 그런 말들은 의도와는 다르게 아픔이 내 안에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 몸이 아픔을 담아낼 그릇이 될 수 없게 만들었다. 아픔은 건강을 잃은 상태로만 정의되고 아픈 상태 그 자체는 존재로서 완전히 부정되었다. 암에 걸릴 확률이 4명 중 1명이라는 국가적 통계를 가져오지 않아도 우리 중 누구도 아프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 건강해지길 바라는 말을 전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덜 건강할 때도 삶은 지속되며 또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도를 담은 언어는 없을까?
책을 한 장씩 넘기며 2019년의 ‘아픈 나’를 다시 만났다. 아픈 상태를 건강의 상실이라는 결과로 보지 않고 삶을 이어 나가는 과정 중 하나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점이 아니라 선으로 말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문장 앞을 천천히 채워보았다. 그때 나는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혹독한 스트레스 환경을 3년째 견디고 있었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자면서도 일 생각을 했다. 운 좋게 투자를 받았어도 투자금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았고 다음 투자를 위해 무조건 성장 곡선을 만들어 내야 했다. 월급은 없거나 불규칙적이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 기한이 다 될 때마다 판교에서 을지로로, 삼성역으로, 혜화로 옮겨 다녔다. 더 이상 월급을 줄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끼는 동료들과 속절없이 이별해야 했다. 일에 대한 불안감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는 책임감에 힘들다는 말도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불안, 두려움, 의심, 공포, 자괴감, 자책감, 분노, 슬픔, 억울함, 답답함, … 쏟아지는 감정들에서 도망 다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점이 선이 되어 길게 이어졌다. 얼굴만 있었던 아픔에 몸통이 생기고 팔과 다리가 그려졌다. 나의 아픔이 서사(narration)로 읽혔다. 영화 속 미운 캐릭터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나오면 미워하기 어렵듯이, 아픈 상태를 미워하는 마음도 날카로운 화살을 내려놓았다. 나는 비로소 아플 수 있었다. 아픈 것 때문에 더 아파하지 않으면서, 아픈 만큼 아플 수 있었다. 내 안에 아픔이 살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해 주었다. ‘아픈 나’는 고정된 상태나 결괏값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면서 ‘아픈 나’에게서 민폐, 비생산적, 쓸모없음 … 같은 단어를 지웠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행봉 위에서 발을 옮기며 걸어갈 때 조금씩 몸이 흔들리며 나아간다. 아프다는 것은 몸의 자정 작용 중 하나로 평행봉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좌우로 몸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도 흔들리지 않고 평행봉을 건너갈 수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떨어지지 않는 것이 최고가 아니다. 흔들리고 떨어지는 것은 ‘더 잘’ 흔들리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더 잘 흔들릴수록 더 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바람직한 사회는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상처받은 치유자 wounded healer 들의 공동체라는 정희진 여성학자의 말에 밑줄을 치며 책을 덮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