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처음 서울에 왔을 땐 어느 해의 겨울이었다. 칼날 같은 바람이 살을 에던 이월의 어느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앞으로 지낼 방을 구하러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불과 두어 시간만에 계약한 방은 대단지 아파트 공사장 인근의 어느 하숙집으로, 식사가 제공되는 대신 해가 잘 들지 않았고 잠깐만 창문을 열어두면 공사장에서 날아온 흙먼지가 방 안 곳곳에 쌓였다. 추위에 쫓겨 급하게 계약한 방이었다. 발이 너무 시려워서 도저히 더 보러 다닐 엄두가 들지 않았다. 말로만 들었던 서울의 겨울 날씨는 생각보다 호됐고, 나는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털 달린 신발을 마련했다.
그때까지 내게 털장갑, 털모자 따위란 그저 기분을 내기 위한 악세사리였다. 말하자면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으로, 있으면 좋지만 없더라도 생존에 지장을 주진 않는,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에 불과했다. 내 고향에선 그런 것(?) 없이도 겨울을 나는 데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특히 끈 달린 벙어리 장갑이라든가 술 달린 털모자 같은 건 귀여운 척할 때나 착용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절대로 하고 다니지 않았다. 하물며 털신이라니. 나와 친구들은 봄에 신던 운동화를 겨울에도 아무렇지 않게 신었고, 그러면서도 겨울용 신발이 따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어그가 유행하기 전임을 밝혀둔다).
서울에 산지 어느덧 10년이지만 이곳의 겨울은 해마다 새롭게 혹독하고, 털신은 이제 내게 쌀처럼 생필품이나 마찬가지다.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에도 털 달린 부츠를 신고 있으면 따뜻해서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신발 안쪽에 털을 다는 기발한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넘을 월에 겨울 동 자를 쓰는 월동은 말 그대로 겨울을 넘어가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선 날개보다도 털이 필요한 법. 가게마다 캐롤이 울려퍼지고 여기저기 트리가 세워지는 이맘때, 털신에 발을 쑥 밀어 넣으며 겨울을 훨훨 넘어 다닐 채비를 한다. 영원토록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새하얀 페이지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