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어디서 읽은 이야기다.
바람은 그날 아침부터 바빴다. 어디선가 얼음이 얼었고 곳곳에 그 소식을 전하느라 바람은 전날보다 확실히 분주해져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 대기 또한 바람으로부터 얼음의 탄생을 전해들었다. 대기는 즉시 인간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제부터 대기의 유일한 관심사는 얼음이다. 얼음의 안위가 무엇보다 우선이다.
‘누가 얼음을 맡지?’
얼음이 태어났는데 얼음을 낳았다는 이가 없다. 서둘러 달려온 어둠이 자리를 마련하고 토론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나뭇잎이 술렁이면 강이 낮은 소리로 응답했고 달과 땅은 주로 들었다. 먼 곳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는 바다가 어떠한 결정이든 따르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어둠이 자리를 뜨기 직전 대기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고 그 순간 만물이 침묵했다.
‘얼음은 겨울이 맡아서 키운다.’
얼음을 보살피고 기르는 임무가 겨울에게 주어졌다. 대기의 마음을 읽은 겨울이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이제 겨울에겐 얼음이 전부고 얼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얼음을 품에 안아든 겨울은 서둘러 하강한다. 산 정상에서 골짜기로, 들판으로, 마을로 내려온다. 겨울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대기는 겨울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무엇도 겨울을 막을 수 없다. 얼음은 겨울의 눈길 아래 무럭무럭 자란다.
갓 태어난 얼음은 궁금한 게 많다. 얼음은 세상을 누비며 갖가지 소리를 듣는다. 낮이면 썰매를 끌고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밤이면 강둑 옆에 늘어선 갈대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얼음은 자신 밑으로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너의 시작이고 끝이야. 검고 차가운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나는 너를 떠받치고 있지만 너를 주저앉힐 수도 있지. 이제 얼음은 마냥 어리지만은 않았다. 겨울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얼음이 어느 정도 자라서 시작이나 끝 같은 것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바깥에서 나는 소리보다 자신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무렵 눈이 왔다. 눈송이들이 얼음 위에 착지하는 동안 북 치는 소리가 났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얼음을 둥둥 울렸다.
얼음은 더 이상 세상을 누비지 않았고 외진 호수에 틀어박혀 지냈다. 눈이 계속해서 내렸고, 가끔 새가 찾아왔고, 바람이 마을 아이들과 갈대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겨울은 이제 늙었고 얼음은 어엿한 모습으로 자랐다.
한번은 한밤중에 얼음이 깼다. 새들도 날개짓을 멈추고 잠든 시간, 호수 근처 어딘가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마을에서 들었던 소리, 사람의 발소리였다. 그것은 점차로 가까워졌고 이내 호수 위를 사선으로 길게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발소리가 건너가는 동안 얼음 위에 흔적이 남았다. 얼음은 오랜만에 자신의 안쪽 깊은 곳에서 흐르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느라 지쳤고 자신이 그 소리를 그리워했음을 문득 깨달았다. 발소리는 한참만에 호수 반대편에 다다랐다. 그리고 산속으로 저벅저벅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었다. 겨울과 얼음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풀과 꽃이 호수 가장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호수를 발견했을 때, 그는 다만 자신이 모르는 일이 이곳에 있었음을 알아차릴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