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야끼의 탄생
나쁜 습관은 힘이 세다. 마치 뇌 속에 고속도로가 매끄럽게 뻗어있는 것 같아서, 선택의 순간마다 미처 제어할 틈도 없이 그 방향으로 달리게 된다. 나 역시 여러 나쁜 습관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그중 힘이 가장 센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잘못 든 식습관이다. 이를테면 나는 매일 퇴근 후 귀가 시간에 맞춰 배달음식을 시키는데 메뉴는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마라샹궈, 엽떡, 아구찜, 치킨, 똠양꿍.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자극적인 것. 지친 하루 끝에 남은 마음의 잔여물들을 덮어쓰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맵고 짜고 시큼한 것. 하루의 힘듦이 컸을 수록 보상심리도 덩달아 커져 어떤 날에는 엽기떡볶이와 치킨을 함께 시킨다. 당연히 혼자서는 먹지 못할 양이니 남은 음식들을 다 버리고, 다음날이면 새로운 것을 또 시키는 악순환이다.
그러다 얼마 전, 역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빨간 타코야끼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이 두툼한 분홍색 문어 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트럭이었는데 그 앞에는 족히 일곱 명 이상 줄을 서있었다. “타코야끼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저렇게 줄까지 서지?” 배달음식 어플에 ‘타코야끼'를 검색하자 별점이 만점인 가게가 두 개나 나왔다. 큰 고민 없이, 최소주문금액을 맞춰 타코야끼 15,000원 어치를 주문했다. 도착한 타코야끼는 그냥 그랬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타코야끼라고 할 수 있을 텐데도, 어딘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거긴 좀 다른가? 내일은 그 트럭에 가봐야겠어.’
다음 날 찾은 타코야끼 트럭은 역시 줄이 길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내 차례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트럭 안을 비로소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밀가루 반죽과 말린 문어 조각이었던 것이 퐁실하고 온전한 타코야끼 한 알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숙련된 손기술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지. 그 모든 순간을 지휘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거의 50분을 기다린 끝에 받아든 11알의 타코야끼 맛은 아아, 황홀했다. 집에 오는 동안 조금 식었을 텐데도, 한 알 한 알이 훌륭했다. 만족스러운 곡선의 타코야끼 한 알을 먹을 때마다 사장님의 몰입하던 눈과 손이 떠올랐다. 그렇게 교감하듯 타코야끼를 먹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본 나는 조금 깜짝 놀랐다. 내가 웃고 있던 것이다. 배달시킨 흰색 플라스틱 용기들 앞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들이키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어딘지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평일 저녁식사가 참 오랜만이구나,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다시 찾은 타코야끼 트럭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트럭이 매주 화,목,토요일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3일은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타코야끼가 탄생되는 것을 보며 멍을 때림으로써 힐링하는 것을 일컫는 ‘타멍'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11알을 시키면 한 알을 서비스로 받는 단골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트럭이 오지 않는 월, 수, 금요일에도 하루 정도는 동네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와 차려먹는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타코야끼의 탄생을 관찰하고, 기다리고, 설레하며 집까지 품고 오는 시간들이 쌓여 내 안에 어떤 마음이 피어난 걸까? 꼭 직접 썰고 끓이고 요리하는 것까지가 아니어도 내가 먹을 것을 직접 포장 정도는 해오는 수고로움, 시간을 들여 메뉴를 정하고 기다리는 동안 생겨나는 기대감 같은 것들이 우리의 한 끼에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