똠얌꿍은 슬픔에 좋다. 시큼새큼한 맛과 강한 향은 어지러운 마음을 잡아준다.
엄마와 눈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도 슬픔에 좋다. 엄마와의 순간은, 오랜만에 해외로 짧은 휴가를 떠난 직장인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걸 진심을 다해 아쉬워하는 것과 같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슬픈 마음도 엄마와 진심으로 나누고 나면, 무거운 감정은 아래로 가라앉고 따뜻한 다짐과 위로가 가만히 차오른다. 그러면 숨이 좀 쉬어진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도 엄마를 더 걱정해서, 평생 엄마를 걱정하느라, 걱정하면서 살 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더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어쩔 때는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다. 엄마를 평생 걱정하느라 나는 바쁘고, 열심히 산다. 그냥 대부분의 시간에 엄마를 걱정하면서 산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상담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엄마는 나보다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인데도 그렇다. 엄마 걱정은 그냥 나의 습관이고, 내가 거친 삶에 맞서는 무기이고, 방어기제다.
엄마가 인생 최고의 만찬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어느 날엔가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가 온 주방을 엉망으로 만든 채 배시시 웃으며 가리키던, 바삭히 튀겨낸 조기라고 했다. 엄마가 말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을 기억을 공유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라져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니까. 그렇게 영영 내가 듣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이야기가 혹시 또 있을까, 나는 가끔씩 조바심이 묻은 여러 질문들을 엄마에게 습관처럼 건넨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가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는 건 놀랍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아빠는 정말 신나 했겠지. 온갖 최신 기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코인이 있는 세상을 아빠가 맛보지 않고 떠난 것은 다행일 지도 몰라. 엄마와 나는 농담도 한다. 그러다 엄마가 말한다. 떠난 사람 이야기는 안 하고 사는 집도 있다던데. 나는 이렇게 너랑 아빠 얘길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엄마는 평생을 본인이 아빠를 데리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그 넓고 무던한 마음으로 뾰족했던 엄마를 품고 살았던 거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예민하고 뾰족했던 자신이, 네 아빠를 만나 많이 둥글어졌고, 그렇게 많이 둥글어진 덕분에 지금 이렇게 주위에 좋은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거라고 했다.
아빠가 떠나고 몇 년 간은, 엄마가 살고 싶지 않아 할까봐 겁이 났다. 다행히 이제 그런 걱정은 없다. 엄마의 건강 걱정, 내가 엄마에게 보답하고, 엄마를 원없이 호강시켜줄 기회가 내게 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뭐 그런 조바심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은퇴를 하고, 언젠가 할머니와 반야도 떠나고, 지금의 것들이 한 차례 모두 흘러가고 나면, 그 애도를 충분히 갖고 남은 삶에선 어떠한 것도 책임질 필요 없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프랑스 자수도 배우고 싶댔다. 산티아고도 가고 싶고, 통영 동피랑 마을도 가고 싶고, 집도 오직 엄마의 취향대로 꾸미고 살고 싶댔다.
나는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꼭 살게끔 도우려고 한다. 그렇게 돕기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와 돈 중 일부를 적금처럼 아껴두려고도 한다. 엄마에게도 말했다. '엄마, 나는 아이 안 낳고 살기로 했거든. 일 년에 두 번씩 여행 다니고, 새로운 것도 계속 배우고, 공부하고, 그렇게 살기로 했어. 우리가 아이 낳지 않아서 아끼는 돈과 에너지, 시간은 가족들에게 더 쓰기로 했어. 그러니까 걱정 마. 건강만 해. 남은 생은 점점 더 편하고 점점 더 좋아지게만 해줄게.' 어렸을 땐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준댔지만 아직 그건 못했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선 이런 약속을 할 여유가, 준비가, 자신이 없지만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분명히 있고, 자신 있는 것까진 아니어도 각오는 되어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미리 말해준다. 너무 오래 아껴두지 않고. (오래 아껴두는 것은 똥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살아 있다거나, 눈빛과 감정, 감각 같은 것들이 생생히 살아 있을 때,
소중한 사람이 바로 옆에 살아서 함께 하고 있을 때,
그런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마음을 전하고, 질문하고, 들으며 살려고 한다.
이걸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당연한 줄 알고 누렸던 존재가 주는 든든함과 행복이 내게 공백이 된 것을 목격할 때 슬퍼지는 순간이 가끔은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일을 지나오며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보는 눈, 진심으로 같이 공감하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 현재 이 순간에 더없이 감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나의 현재에 감사하다 보면, 슬픔도 조심히 자리를 비켜주듯 물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