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6인용 테이블을 놓았다며 즐거워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꽃 시장에서 한 다발꽃도 사 와서 예쁘게 꽂아두었다고. 지난 일주일간 부산에 있는 엄마 집에 다녀왔다. 자그마한 거실이 6인용 테이블로 꽉 차 있었다.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었지만, 엄마는 집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꼭 필요한 거였다며 연신 맘에 들어 했다. 넓은 테이블이 생기니 편하긴 했다. 밥 먹을 때마다 상을 펼치지 않아도 되고 TV를 볼 때도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봤다. 테이블 위에 흐드러지게 핀 꽃 그 사이에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엄마 이제 이 집이 좀 마음에 드나 보네. 이런 가구도 사고.”
“응. 이 집 괜찮은 것 같아.”
“여기 이사 올 때 내가 소파 사준다고 했는데도 안 한다고 했잖아. 여기 오래 안 살 거라고.”
“그랬지. 근데 살아보니까 좋아.”
이번에 가보니 엄마가 새 보금자리에 꽤 정을 붙인 것 같았다. 매주 아파트 안에 있는 운동 센터에서 꼬박꼬박 요가도 하고 뒷산에는 맨발 걷기 하는 곳이 있다며 같이 걸었다. 새 동네로 이사 온 지 3년 만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어려운 사정 때문에 이십여 년간 살고 있던 집을 급하게 팔고 이 집에 들어왔었다.
그동안 엄마 집에 머물 때마다 사소하지만 자주 사용하는 생활 도구가 없어서 불편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소파나 식탁이 아니더라도 설거지 후에 그릇을 말리는 받침대나 수세미 걸이, 휴지통처럼 없어도 큰 상관은 없지만 실제로 없으면 꽤 불편한 물건들이었다. 몇 번이나 엄마에게 좀 사라고 말한 적은 있었지만 괜찮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엄마 혼자 있는 집에 물건 늘릴 필요 없다고, 요리도 잘 안 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겨울이었나 엄마 집에 갔을 때 지언이가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해 줬다. 엄마는 또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밀어붙여서 그렇게 했다. 막상 비데가 생기니까 엄마는 우리가 가고 난 뒤에도 몇 번이나 전화가 와서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 괜찮다는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던 게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 스스로에게 베푸는 호의나 친절이 언제나 마지막 순위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 현상을 굳이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오전에 잠시 엄마가 볼일을 보러 나가고, 거실을 가득 메운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매일 손님이 오는 게스트 하우스도 아니고 엄마 혼자 사는 집에 뭐 하러 이렇게 큰 테이블을 샀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가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세로로 하면 어떨까 하고 낑낑거리며 위치를 바꾸니 옆에 요가 매트 깔 정도로 약간의 공간이 생겨서 좀 나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물을 먹을 때도 집에 정수기나 생수가 없어서 불편했다. 싱크대 옆에 조리수가 하나 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밍밍한 온도의 물을 먹을 때마다 얼음을 찾게 됐다. 정수기 하나 놓아주겠다고 하니, 엄마는 불편한 게 없다고 한다. 평소에 물을 잘 먹지도 않고 미지근한 물이 좋아서 지금도 충분하다고. 엄마는 자신이 좀 불편하고 마는 게 편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걸 이해하고 다시 그 말을 들으니 상황 분간이 되었다. 정수기 회사에 전화해서 가장 빨리 설치되는 날이 언제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빨리 좀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수기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부엌 정리를 시작했다. 10인용 밥솥을 (혼자 사는 엄마는 10인용 밥솥을 쓴다) 전자레인지 옆으로 옮기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이소에 들러서 몇 년간 묵혀둔 쇼핑을 했다. 설거지 받침대, 수세미 걸이, 휴지통, 음식물 쓰레기 보관함…. 엄마의 평범한 일상에도 안온함이 묻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머나! 너무 깨끗하네.”
엄마가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왜 했냐는 말을 한 번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 없이 좋아하셨다. 테이블도 이렇게 놓으니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고 커다란 밥솥도 옮겨두니 주방이 훤해 보인다고 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매일 쓰거나 닿는 곳이 돌봄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엄마가 그렇게 나를 돌봐준 적은 많았는데, 내가 엄마를 그렇게 돌본 적 있었나? 엄마가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애써 돌봐준 다른 가족들은 많았는데,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생각들이 스쳤다.
엄마가 선택한 가구와 가전의 크기를 보면 엄마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같다. 집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외삼촌, 외숙모, 이모들, 조카들, 친구들 … 아무 이벤트가 없는데도 그냥 들러서 밥 먹고 며칠씩 쉬었다 간다. 우리가 부산에 도착하기 전날에도 엄마 친구들이 와서 1박 2일을 보냈고, 우리가 서울로 가는 날에는 외삼촌 외숙모가 도착한다고 한다. 당연한 듯이 안방을 내어주고 작은 방에서 잘 준비하는 엄마를 보면서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엄마,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 오면 안 힘들어? 엄마도 좀 쉬어야 하지 않아?”
“법화경 사경하면서 배웠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라고 하더라. 그 사람이 나니까 편안하게 해주고 싶고 귀하게 대하는 거지, 힘든 게 없어.”
엄마 집을 청소하면서 내 마음이 편해진 것은 결국 내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을 줬기 때문일까. 엄마가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먹는 것, 함께 앉는 것, 함께 사는 것. 엄마가 이 집을 사랑하게 된 것이 좋았다. 엄마의 거실에는 늘 6인용 테이블이 있고 엄마의 부엌에는 언제나 10인용 밥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엄마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