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5 (맑음) @홈카페
칠월의 무더운 어느 날, 원주의 서점 겸 카페 <바다에 내리는 눈>(이하 <바눈>으로 줄임)의 지혜님이 북바인딩 워크샵을 제안해 주셨다. COVID19 이후 북바인딩 워크샵은 하지 않고 있기에 거절의 메시지를 쓰면서도 <바눈>을 좋아하기에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북바인딩 워크샵은 어렵지만 무엇이든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여지의 말을 남겼다. 지혜님은 여지를 기쁘게 받아주시며 무엇이든 자유롭게 기획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 힘들고 부담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북바인딩 워크샵을 수차례 했고, 책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를 출간하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북토크를 했다. 북토크라고 하지만 삶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기획했기에 PPT를 준비하고 대본을 쓰고 1시간 분량의 말을 달달 외워 준비했다. 글과 달리 말은 준비하는 순간부터 내뱉는 순간까지 긴장과 부담이 따르고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듯 허무하다. 당분간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자리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고 간간이 요청이 들어올 때면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바눈>으로부터 제안이 왔을 때는 망설였다. 바눈을 꾸려가는 두 사람을 오랫동안 은은하게 좋아해왔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하신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눈>의 아름다운 시공간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을 테니 흘려보내기엔 아쉬웠다. 망설이고 망설이던 중,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공간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일기 워크샵'을 <바눈>에서 개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사람이 모여 각자 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일기 쓰는 경험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워크샵인데, 지혜님은 우리의 제안을 흥미롭게 받아주셨다. 다만 공공 지원 사업이기에 여섯 사람은 너무 적고 최소 열 사람은 모집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열 사람, 스무 개의 눈동자… 상상만 해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끝끝내 해보자고 마음 먹은 건 <바눈>의 두 분과 현우가 함께 한다는 데 있었다. 초록 나뭇잎에 단풍이 물들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월의 어느 날, 일기 워크샵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공간은 일기를 쓰는 장소를 의미하는 일기-장(場)으로, 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어떤 일보다 오랫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하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일,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하자'고 말해야 한다면 지금으로선 '일기'뿐이다. 일기-장(場)의 시간은 대부분 혼자 일기를 쓰고 사색으로 채워지겠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몇 사람이 함께 모여 일기 쓰기를 안내하는 워크샵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물론 워크샵의 내용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20년 동안 일기를 써왔지만 '일기'를 안내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일기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일기에 굳이 안내가 필요할까? 꼭 해야 하나? 그것도 내가? 어떤 행위의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시시때때로 '굳이?'를 물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내려놓는 사람, 그건 오랫동안 내 삶을 이끌어온 특징으로 상황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약점이 되기도 했다. 워크샵을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의심의 안개가 짙게 드리운 숲길에서 길을 찾듯 언어를 수집해나갔다. 내가 지나온 일기 여정과 비슷한 결을 지닌 책을 읽을 때면 반가웠고, 저자가 나에게 일기를 참 잘 써왔다고, 너의 일기 방식을 마음껏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칭찬과 응원을 마구 퍼부어주는 것 같아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텅 빈 독을 채우듯 말을 하면 대단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프다.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껍데기만 팔랑거리는 말은 하지 못한다. 알맹이가 얼마나 옹골찬지 모르고 직관이 이끄는 대로 일기 워크샵을 하겠다고 덜컥 결정해버리다니, 이번에도 너무 무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면 어떡하지? 커다란 걱정을 안고 일기에 대한 나의 언어를 한 문장 한 문장 정리해가면서 걱정은 조금씩 안심으로 변해갔다. 적어도 일기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작가의 멋들어진 문장을 인용하거나 애써 꾸며내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나의 언어가 진실하고 풍요롭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안도감이 워크샵을 준비하는 동안 쪼그라든 나를 위로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준비했다. 현우와 회의를 하며 얼개를 짜고 대본을 쓰고 좀 더 정확한 언어로 다듬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받고 나의 말씨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소재 하나만 던져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말할 거리와 순서를 정돈해놓지 않으면 얽힌 실타래 같은 덩어리를 쏟아낸다. 나도 그 말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한 번에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워크샵 자리에선 차라리 내뱉지 않는 편이 낫다. 게다가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의 눈빛을 받으며 말할 때면 얼굴은 딸기처럼 빨개지고 목구멍이 턱턱 막혀버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대본을 달달 외워 연기를 하듯 말하는 것뿐이었다.
북바인딩 스튜디오 <안녕늘보씨>를 시작했을 때 독립서점에서 북바인딩 워크샵을 진행했다. 현우는 군대에 가서 혼자인데다 수줍음으로는 최고점을 찍었던 시기에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내 성격대로 조용히 하고 있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리라는 건 명백한 현실이었기에 현우는 책방 사장님께 이메일을 드려 북바인딩 워크샵을 잡아주고 군대로 떠났다. 현우를 원망할 만큼 첫 북바인딩 워크샵의 부담감이 나를 참 괴롭게 했지만 그 이후로 워크샵을 꾸준히 하면서 아주 조금씩 <안녕늘보씨>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이어진 활동들로 현우와 나는 북바인딩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여전히 저항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일기-장(場)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기 워크샵이 필요하다. 일기를 쓰는 것이 왜 좋은지, 어떻게 일기를 써야 하는지 안내하고, 일기 쓰기에 알맞은 환경을 마련하여 일기를 써볼 때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일기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일기를 쓰러 일기-장(場)에 자연스럽게 찾아와줄 때가 언젠가 올 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확실히 아니므로 우린 작은 목소리로 일기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뛰어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도 32살, 무대에서 내려와 오직 녹음 테이프로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로 결정하기까지 과할 정도로 많은 연주회에 임하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최고점으로 쌓아갔다. 유명해져야 사람들이 그의 녹음 테이프를 사서 들을 테니까. 글렌 굴드도 이런데 하물며 나는 어떠랴. 하고 싶은 일을 자기다운 방식으로 하면서 먹고 살기까지는 얼마간 괴로운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함의가 많은 문장을 쓰고 읽길 좋아한다. 그러나 말의 언어의 경우 몇 번이고 곱씹게 만들면 곤란하다.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다음 문장이 들이닥칠 테니까. 말은 훌훌 들이킬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쓸 땐 힘이 들긴 들어도 나의 속도대로 문장을 쓰고 덧붙이고 비워내며 문장을 마음에 들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기도 한데, 말을 하기 위해 대본을 쓸 때는 열심히 써도 어쩐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말과 글은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새삼 재확인하며 아무리 나의 언어지만 어색한 말들을 입에 붙도록 계속해서 연습해나갔다. 낯선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했다. '자연스럽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막 태어난 문장을 어떻게 차분하고 진득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을 하면서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수다와 거리가 먼 나는 한 번 리허설을 하고 나면 흐물흐물한 아메바가 되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하여 운동도 건너 뛰고 일기도 건너 뛰어야겠다고 말하니 현우는 몇 초의 정적 후 내게 말했다. "헬스 트레이너가 운동을 매일 안 할 수 없듯이 일기-장(場) 지기라면 매일 일기를 써야 하지 않을까?" 그는 나의 게으른 마음에 경종을 울렸고 그때부터 그 말은 나를 따라다녔다. 일기를 안 쓰고 잠에 든 날에는 중요한 일을 건너 뛴 것처럼 찝찝했다. 운동은 하지 않아도 마음의 걸림이 전혀 없는데 일기는 그렇지 않았다. 워크샵을 준비하며 일기는 나에게 더욱 중요해졌고 입을 개운하게 하는 양치질처럼 마음의 개운함을 위해 잠에 들기 전 꼭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워크샵 하루 전날은 최종 마무리를 하느라 무리를 했다. 말을 하며 외우고, 손으로 쓰며 외우고, 참여자 분들에게 선물할 일기장을 만들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도 그리고, 강의 요약본을 프린트하고, 워크샵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다 보니 정신이 멍했다. 일주일 내내 체력과 정신력을 몽땅 다 쓰며 살다 보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현우와 장난칠 기력도 없어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현우도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긴장되는지 표정이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잠에 들기 전 피곤에 찌든 꼬부랑 글씨로 다음 날 있을 미지의 시간에 대한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워크샵 당일, 아침 8시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 10시, <바눈>에는 16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공간이 너른 덕분에 서로 편안한 거리를 두고 앉을 수 있었다. 우리의 자리는 열 여섯 명의 시선이 하나로 모이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었다. 1시간 동안은 준비한 이야기를 연습한 대로 풀어냈고, 30분 동안은 각자 일기를 쓰는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 명상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아래로 뜬 채 슥슥, 자신의 글씨로 마음에 있는 말을 쓰는 사람들 곁에서 나도 마음을 일기장에 풀어놓았다. 방금 전 워크샵에서 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일기를 쓰는 순간은 휩쓸리는 계곡물에서 허우적대다가 큰 바위 뒤로 숨어 잠시 숨을 고르는 느낌이에요." "일기를 쓰면서 저는 제 안의 불안하고 초라한 '나'의 곁에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언제까지고 계속 들어줘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일기장으로 파고 들어가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사람들 앞에서 뭐라도 된 것처럼 삶의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어떤 행동을 제안하고, 미궁의 눈동자들이 긴 시간 동안 끈기 있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아 내내 숨고 싶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겪는 감정이다.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내가 워크샵과 북토크를 이렇게나 많이 해왔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설명이 잘 안 된다.
워크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지친 몸을 추스르고 회복하는 데 이틀이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피곤해서 다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낮잠을 3시간이나 잤는데도 밤이 되면 또 잠이 쏟아졌다. 무리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후유증이 오래갔다. 때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하면서도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일이 있다. 이번에 이 일을 한 이유는 <바눈>에서 초대해 준 마음이 고맙고 귀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고 싶을 만큼 두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현우와 함께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했다. 도전과 안정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면 나는 혼자로서의 내가 아닌 현우와 함께 하는 나로서 선택을 한다. 현우와는 어떤 경험이든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나의 폐쇄성으로 인해 현우가 할 수 있는 삶의 경험마저 비좁게 만들고 싶진 않다. 그래서 의견을 물어보고 현우가 하고 싶어 하면 나도 함께 한다. 그가 내게 그러했듯이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했을까, 싶은 일들을 해오며 여기까지 왔다. 이번의 일기 워크샵도 어째서 나는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서 또 말을 하기로 한 걸까, 하는 한 줌의 허무와 후회를 지울 수 없었지만 결국 이 선택 말곤 다른 선택지는 없었음을 받아들였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다. <바눈>과 함께, 현우와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로서는 영 이상한 선택을 했고, 앞으로 또 어떤 이상한 일을 하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