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1. 맑은 하늘에 양떼 구름 @홈카페, 브라운 홀릭 원두(온두라스 베야 비스타 워시드)
영월의 어느 산골,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5박 6일을 지냈다. 딱새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진돗개의 안내를 받아 하루 세 번 숲을 산책하고, 릴렉스 체어에 앉아 책을 읽고, 비가 오는 날에는 해먹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바람에 몸을 비비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낮잠을 자고, 드넓은 하늘에 속절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시나브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고, 깜깜한 밤에는 장작을 피워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고, 촉촉한 흙바닥에 등을 기대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잠에 들기 전에는 서걱이는 만년필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쓰는… 그저 듣고, 느끼고,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하염없이 느긋했는데, 집이라는 일상으로 돌아오니 한없이 분주해졌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새 소리 뿐인 고요한 곳에서 차가 쌩쌩 질주하는 곳으로 바뀌어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집안 일과 생업을 하면서 바빠진 건지 생각했다. 산골 오두막에서는 생업을 멈췄고, 새로이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한 머리 굴림 또한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주함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일기에 ‘내 마음을 분주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을 남기고 일기장을 덮었다.
잠에 들기 전, 법정 스님의 책 『오두막 편지』를 펼쳤다. "시곗바늘이 지시하는 시간 말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태평해졌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나는 비로소 자주적인 삶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질없이 살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시간 밖에서 살다」라는 소제목의 꼭지를 읽으며 나의 분주함 역시 시간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불을 개고, 바닥을 쓸고, 빨래를 널고, 택배를 보내고,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메일에 답장하고,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바탕화면 한 켠에 켜놓은 할 일 목록과 눈에 보이는 집안 일이 분주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일을 다루는 내 마음 속 시간표에 있었다.
고정된 출퇴근 시간이 없는 우리는 암묵적인 일과표에 맞춰 생활하고 있다. 8시 즈음 일어나, 9시 30분 즈음부터 2-3시간 일을 하고, 1시 즈음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기 전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고, 돌아와 잠깐 낮잠을 자고, 5시에서 6시 사이에 저녁을 먹고, 2-3시간 후에 운동을 하고, 잠에 들기 전에는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다. 정확한 시간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를 꾸짖는 것도 아니지만, 제멋대로 살 수 있는 혼자의 삶이 아니라, 함께 맞춰가며 사는 공동의 삶이기에 자연스레 일과표가 생겼다. 물론 그날의 날씨에 따라, 체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즉흥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일과표 덕분에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건 좋지만, 때로는 일과표가 나를 재촉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오전 10시에는 일을 시작해야지, 아침을 먹기 전에 이불을 개고 청소를 끝내야지, 점심을 먹기 전에 배송 보낼 것들을 포장해야지… 이렇게 시간을 쪼개어 할 일들을 끼워 넣다 보니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이다. 오후에 조용한 카페에서 책 읽는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우면, 이렇게 생각이 이어진다. 카페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다, 그러면 몇 시 즈음에는 도착하는 게 좋으니까 집에서는 언제 출발해야 하고, 늦어도 언제는 점심을 먹는 게 좋겠다… 특히나 면(面) 단위에 위치한 카페를 가거나 산책길을 걷기 위해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타야 할 때면 마음은 더 분주해진다. 행여 버스를 놓치면 그 먼 거리를 택시 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아침을 먹으면서도 시계를 확인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그릇을 놓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영월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5박 6일 내내 숙소에만 머물렀기에 가야 할 곳도, 찾아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자연스레 마음 속 시간표는 비활성화되었고, 시간을 쪼개어 할 일들을 끼워 넣는 마음의 일도 멈추었다. 할 일이라고는 밥을 정성스레 차려먹고, 먹은 것을 소화하기 위해 숲을 산책하고, 책 몇 쪽을 느긋하게 읽다 스르르 잠에 드는 것뿐이었다. 촘촘하게 쪼개진 시간 관념이 흐릿해진 그곳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었고, 시간을 정해두고 낮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자고 싶은 만큼 잠에 들었다. 시간은 잘못이 없었다. 시간을 잘게 쪼개어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나의 시간 관념이 나를 분주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시간을 의식하고, 쪼개고, 계획하는 마음의 바탕에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느 하나의 경험에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챙기고, 깊이 들어가고, 충분히 음미하기가 어려워진다. 할 일은 늘 끝이 없고, 버스를 타려면 시간표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영월에서의 '시간 밖의 삶'을 의식적으로 삶에 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저 듣고, 느끼고, 바라보는 하루. 시간을 잊어버리고 그냥 놓아버리는 하루가 촘촘한 시간표로 헐떡이는 분주한 마음에 길고 느린 숨을 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럼 너무 멀리 가지 않고,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 밖에서 살 수 있다." 『오두막 편지』, 법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