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정도 치료를 받았을 때 선생님이 내 몸을 그려주셨다.
“조금 과장되게 그리면 이렇게 생겼어요. 일단 평발이시고. 언뜻 봐도 오른 다리가 짧아보이는데, 그건 오른쪽 골반이 들려있어서고요. 오른쪽 골반이 들려있다보니 허리는 왼쪽 방향으로 휘었고, 흉추는 오른쪽 방향으로 휘어있어요.”
이렇게 S자 모양의 측만을 갖고 있으면 조금 적나라하게 말해서 상체가 찌그러진단다. 왼쪽은 어깨부근에서 갈비뼈있는 곳까지 찌그러져있고, 오른쪽은 허리가 집혀있다. 측면에서 척추를 보자면 상태는 조금 더 심각해서 원래 곡선을 띄어야할 아래 허리는 판판하고, 목은 일자를 넘어서 반대쪽으로 꺾여 있다고 했다.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그림을 핸드폰 잠금화면 배경 사진으로 지정해놓았다. 앞으로는 일할 때 자세를 똑바로 해보자고 다짐하는 의미에서.
그날도 앉아서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핸드폰 배경화면이 눈에 걸렸다. 몸을 의식해봤다. 정말 딱 저 그림의 모양 그대로라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저렇게 불편해보이는 자세가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 우울해졌다. 수년, 아니 수십년에 걸쳐 잘못된 움직임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체가 나사 돌듯이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제대로 몸을 바로 잡고 일을 해보려고 하니 일에 잘 집중이 안됐다. 자세에 신경쓰느라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머리에 잘 입력이 안되고, 한 문단을 쓰는데도 2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록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는 것 같달까. 정신 산만한 느낌에 냅다 자세 고치기를 포기했다. 아마도 나는 평생 이런 몸뚱이로 살 것 같다는 불길한 미래가 그려졌다.
다시 운동하러 갔을 때 선생님께 심란한 마음을 토해냈다.
“일할 때 보니까 진짜 이상한 자세로 앉아있더라고요. 목은 거북목이고, 왼쪽 팔만 팔걸이에 닿아있고, 오른쪽 갈비뼈는 옆으로 들려있고. 제대로 자세를 만들어보려고 하니 일이 안 되더라고요. 운동하면 뭐해요. 하루종일 그러고 있는데. 저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봐요.”
“에이, 일할 때는 원래 자세 고치기 어려워요. 어떻게 일하면서 몸을 계속 의식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운동하는 거잖아요? 일할 때는 일하고, 일 끝나면 운동하는 거죠. 운동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일단 잘 알아야겠고요. 자기 몸에 필요한 움직임을 알아두고 계속 나름대로 신경쓰는 거죠.”
자세를 고쳐서 몸을 바로 세운다는 것이 참 머리로는 좋은 생각인데, 현실에 적용이 안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일하면서 매번 자세를 신경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차라리 마음 편히 일하라고 격려해주셨다.
20회차가 지나자 날이 좀 따뜻해졌고, 선생님은 내게 달리기를 권했다. 처음에는 느리게 등산하는 것을 추천했는데, 조금 체력이 붙으면서 한번 뛰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래도 약간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 날 퐁신퐁신한 호카 운동화를 신고, 잘 안 입던 바람막이를 걸치고 비장미 넘치게 집을 나섰다. 홍제천까지 5분 정도를 달리고, 막상 홍제천에 가서는 조금 빠르게 걷다가 30분쯤 뒤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서부터 오른 허리가 심상치 않게 아파왔다.
역시나 골병이 들었다. 오른 허리, 오른쪽 목과 어깨가 만나는 지점, 오른 팔뚝까지 삐그덕 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고, 바닥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자꾸 몸이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한 이틀 꼬박 골골 거리다가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갔다.
“오늘은 컨디션 어떠세요?”
“어떠냐고요! 선생님이 달리라고 해서 달렸다가 엊그제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오른쪽은 안 아픈데가 없다고요.”
달리면 몸무게의 몇 배가 넘는 엄청난 부하가 실린다고 했다. (그런 말을 왜 미리 안 해주시는지. 원.) 말 그대로 몸에 강한 '스트레스'를 주는 게 러닝이라고. 달리기가 쉬운 것 같지만, 전혀 쉽지 않다고 했다. 운동의 정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운동의 정수라고요? 달리기가요? 와. 그럼 이 몸으로 지금 달리는데 잘 달려지면 그게 이상한거네.”
“그쵸.”
“음.. 그럼, 이만하면 저 잘한 거네요!”
민망하지만, 좌절만큼이나 태세 전환도 빠른 편이다. 뛰는 건 원래 힘든 거고, 앞으로도 아프겠지만 조금 덜 아프면서 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어쨌든 5분이라도 천천히 달렸다는 거였다. 다음 주에는 6분 달리면 되겠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 기분이 좋아진 정도가 아니고 진심으로 기뻤다.
이제껏 나는 내 몸이 지금 이대로라면 솔직히 실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세월이 지나며 점점 더 무너져내릴테고,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안 좋은 습관은 점차 강화될 것이다. 매일의 운동으로 지금의 몸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성과였다. 매 시간 조금 풀리는 나사를 자주 조여준다면 벽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 다시 무너지더라도, 또다시 바로 세워놓고, 다시 돌아가면 또 다시 반대로 돌려놓고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해나갈 일이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내게 앞으로도 가는 길이 험하고 구불구불한 데다 죽을 때까지 이어질 거라는 예언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 말이 축복과 저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초'현실적인 조언에 처음으로 희망을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