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쇼는 단연코 <대결 맛있는 패밀리>다. 이 프로그램은 특별히 아껴서 봤고, 분기별로 다시 봤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참가자는 미슐랭 셰프도 아니고, 셰프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도 아니다. 매일 때 되면 밥 해먹고 사는 영국의 일반적인 가족들이다. 규칙은 가족이 팀을 이뤄야 한다는 것뿐이다. 각 가정에서 3명이 팀을 이뤄 출전하는데, 한 라운드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4인 가족이 먹을 요리를 만드는 것이고, 또다른 라운드는 가장 그 집다운 디너 코스를 차리는 것이다.
영국 프로그램이다보니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인도를 여행하고 온 비건 남매들이 인도식 비건 요리를 선보인다. 아내는 인도인인데, 남편은 중동 사람이라서 국적 불문의 요리가 되기도 한다. 국적도, 입맛도, 집안마다 문화도 모두 다른 만큼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나 요리 방법, 메뉴도 모두 제각각이다. 양파 대신 샬롯을 넣으면 어떻게 맛이 달라질까? 아프리카식 졸로프 라이스는 어떻게 요리하는 걸까? 정향과 큐민을 넣고 기름에 튀기듯 볶고 나서 거기에 새우를 넣으면 어떤 향이 날까? 언젠가는 한번 먹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점점 어디서 구할 수는 없는지, 그런 재료를 사용하는 레시피 중 쉬운 건 없는지 살피게 됐다.
그래도 다양한 메뉴와 재료는 다른 음식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재밌는 건 가족들의 독특한 개성과 케미다. 평소에는 공통 분모가 하나도 없지만, 주말이 되면 수다스러운 아버지가 먼저 감자를 깎아 그레이비 소스를 만들고, 무뚝뚝한 아들은 소고기를, 딸은 조용히 케이크를 굽는다. 중국인 엄마는 ‘타이거 맘’이라서 최고의 방법은 자신의 방법이라며 군대식으로 조리를 맡긴다. 그러다 영국인 남편의 만두 빚는 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든 일을 뺏어서 혼자서 다 해버렸다. 케냐에서 이민 온 한 가족은 요리를 하면서 한 명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갑자기 오븐 앞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선정한 메뉴들은 대체로 한 집에서 매일 같이 하는 요리의 변형이라서 몇 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다. 심사위원들도 셰프가 아니라 가족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하다보니, 단순히 음식만 평가하지 않고, 가족의 문화나 팀 워크를 유심히 본다.
“이 요리로 당신 가족을 이해했어요.”
감칠맛도 아니고, 적당하게 시고 달고 짠 맛도 아니고,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맛은 어떤 맛일까. 아마도 그 음식에는 그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전해주신 어떤 레시피에서 나올법한 전통적인, 왠지 푸근한 맛이 나지 않았을까. 진짜 맛있는 엄마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정도 되려나.
한껏 재밌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네가 미친듯이 짖기 시작해서 ‘일시정지'를 눌렀다. “아, 또 배달왔네. 옆집.” 우리 집은 단독 주택인데, 세 집이 같이 사는 특이한 구조다. 윗집은 주인 집이고, 바로 옆 집에는 20대 연인이 산다. 4시쯤 한 번, 8-9시쯤 또 한 번 헬멧 쓴 아저씨가 급히 마당을 가로질러 갈 때는 음식 배달이 온 것이다. 자네가 하도 짖어서 바깥을 못 보게 하려고 커튼을 치러 마루에 나가면, 원하지 않아도 메뉴가 다 보인다. 아이스크림, 탄산 음료부터 밥에 토스트까지 다채롭다. 집 앞 분리수거대에서 찌그러진 맥주캔과 산더미 같이 쌓인 배달 음식 통을 보면 여러모로 걱정스럽다. 나도 몇년 전까지는 배달 음식을 달고 살아봐서다.
사실은 나도 이웃들처럼 요리와는 담 쌓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가끔씩 백종원 아저씨를 따라해 아무리 맛있고 그럴듯하게 요리가 완성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한 의무적인 활동일 뿐이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너무너무 사랑한다면 목표지향적인 요리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으려고, 맛있는 제육볶음을 먹으려고 요리라는 번거로운 일따위 불사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 정도의 음식 사랑이 내게는 없었다.
하나 더 핑계를 대자면 살면서 주변에 요리하는 또래 친구들을 그닥 많이 보지 못한 것도 같다. 요리라고 하면 생존 요리였다. 유학 갔을 때 내가 처음 배운 건 군만두를 맛있게 굽는 방법이었고, 떡볶이 끓이는 방법은 모르면 나만 손해라서 배웠다. 가끔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궁금해하면 0뚜기 카레 가루를 사다가 닭가슴살을 넣고 카레를 끓여주거나, 김치볶음밥을 해준 적은 있었는데, 그 정도면 그래도 요리를 그나마 하는 편이었다. 그때도 대체로 방점은 ‘바삭바삭 맛있는 파전’이라는 결과물에 있지, 요리하는 즐거움에 있진 않았다.
요리가 재밌어진 건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졌을 때,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요리해 먹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맛있게 먹는 재미 말고 요리를 하는 재미가 따로 있더라. 이를테면 제육볶음을 할 때 뭔가 새로운 걸 넣어볼 수 있었다. 집에 생강이 있던가? 집에 소주가 있던가? 아니면 청주? 유자청을 조금 넣어볼까. 무리수? 불도 조절해볼 수 있다. 센불에도 해보고 중간 불에도 해보고, 어떤 게 더 맛있는지 비교해볼 수도 있었다. 대체 왜 맛이 다른지 인터넷도 굳이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한 요리를 가까운 사람들과 나눠 먹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생존 요리가 취미 요리가 됐다.
집에서 매일 쓰는 재료만으로 돈가스 대신 ‘치킨 키예브’(마늘버터가 가득 들어간 치킨 튀김)를 시도해봤다. 가지와 삼겹살만으로 새로운 파스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애호박과 토마토, 가지가 있다면 라따뚜이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당연히 시중 제품을 사용하던 요리들도, 0부터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큰 맛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도 충격이었다. 0뚜기 카레 가루가 아니라, 카레 가루를 직접 갈아서 만들어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냥 내가 밖에서 먹는 모든 메뉴는 사실 집에서도 해볼 수 있는 메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메뉴도 더이상 생존 메뉴가 아니게 되었다. 더 적은 돈으로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이 좋은 걸 왜 하지 않았을까? 왜 난 요리할 생각을 이렇게 늦게 했을까? 배달앱은 너무 쉽고 내 몸은 늘 피로해서? 친한 친구 남편이 떠올랐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변호사인 남편이 집안일을 일절 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럼 그전에는 (그 인간이)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더니, 결혼하기 전까지 요리를 포함해 집안일은 어머니가 주말마다 와서 대신 해주셨단다. ‘음.. 너무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세상이 아닌가. 고등학교 체육, 기술, 가정 시간에 중간고사 대비 수학 문제집 풀면서부터 우리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의 구분을 머릿 속 어딘가 새겨넣은 걸까? 한 어른으로서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하는 일들은 뒤로 한 채로 돈 버는 일만 중요하다고 여기고 산 거 아닐까. 무엇보다 그걸 모두가 그냥 내버려둔 게 아닌가. 요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은 일로 입력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식탁에는 과정이 없다. 우리 집도 그렇지만 대개 어머니들이 일방적으로 밥을 차리고, 먹을 때만 함께 먹는다. 식탁에서 음식을 두고서 그다지 할 얘기가 많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끽 해야 차려진 음식 앞에 앉는 것, 그리고 먹는 것, 운이 좋다면 치우는 것까지가 과정의 전부다. <대결 맛있는 패밀리>를 보면서 다른 가능성도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곁눈질로 보기에는 가족이 같이 요리하는 것만으로 참 많은 게 달라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할지부터 시작해서 누가 무엇을 담당할지, 뭘 더 추가해서 조금 더 풍미있는 음식을 만들지를 함께 고민하고 직접 만든다고 했다. 그들에게 먹는 것은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아무리 식탁에 국이 있고 찌개가 있고 고기 반찬이 있으면 뭐 하나. 과정을 나누는 것이 진짜 풍요가 아닐까. 요리할 때 감자라도 썰게 시키는 건 귀찮은 일을 나눠서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얘기하자는, 우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초대 같다. 공통의 관심사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버지와 아들 지간이어도, 매주 주말에는 같이 음식을 만들면 좋겠다. 감자를 깎고, 버섯을 굽고, 오븐을 데우면 좋겠다. 요리의 매력은 단순히 ‘먹고 사는’ 일 너머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누구나 맛있는 건 좋아하니까 사랑받기에도 딱 좋다. 과정이 있는 삶을 꿈꾼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있게 연결되고 싶다면 요리는 정말 최고의 취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