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원고 마감할 때는 조금 오락가락해야 정상이 아닐까?
초심자의 운 beginner’s luck 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닌가봐요. 첫 책을 쓸 때는 운이 좋았어요. 마냥 편집자 분이 시키는대로 얼레벌레 따라가다보니 끝났거든요. 실용서여서 ‘어떻게 하세요’까지만 써도 괜찮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잘 설명하면 됐던 것도 운이었어요. 그건 당시 밥 먹듯이 하는 일이었고, 거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을 옮겨적기만 하면 됐거든요. 그게 쉽게 쓰인 책인지도 모른채로(가현님, 보희님 고생하셨습니다..) 두 번째 책을 써보겠다고 계약을 해버린 거죠. 두번째 책을 낸다는 건 첫번째 경험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예 다른 일이었습니다.
원고를 쓸 때는 여러 고비가 있더만요. 마침 책 출간 일정이 영은과 비슷하게 잡혀서(제가 한 한 달 정도 빠른 듯 해요.) 서로를 관찰하다보니, 원고 마감하는 이의 멘탈은 원래 이렇게 오락가락해야 정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책 다 썼다' 싶으면 한번쯤은 거의 처음부터 다시 써야 될 것 같은 순간(실제로 많이 다시 써야 함)이 오고요, '이제는 진짜 마감이다!'하면 엄청 많은 피드백이 넘어오고요. 그렇게 왔다갔다 두 번 정도 하면 '이제는 진짜 진짜 끝났다'하면 그때부터 2주는 또다시 꼼짝없이 열심히 써야하나봐요. 그렇게 하고 나서도 순서도 조정하고, 교정교열도 보고 수없이 다시 봐야하더라고요. 불안->성취감->분노->좌절->우울->(잠정 중단 후 다시 쓰기) -> 불안 -> 성취감 -> 강렬한 희열 뭐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 했습니다... 한 집에 이런 사람이 둘이 같이 있다보니 웃픈 일들이 많이 벌어지네요. 하하. 그건 나중에 풀기로 할게요.
4. 글을 쓸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두 가지 피드백
편집자 샘께 원고를 보내면 원고 아래 ‘좋아요. 괜찮아요. 애매해요.’로 마크 되어서 제게 다시 넘어왔어요. 이 책의 편집자는 그 무섭다는, 완전히 믿어주는 상사였던 거죠. 저는 차라리 마이크로매니지 당하고, 구속받고 싶었단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 잘 쓸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고치라고 하시는거지!' 진짜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하고 있을 때면 귀신 같이 알고 샘이 집 앞에 찾아와주셨어요. 오실 때마다 간달프처럼 한두 가지 도움이 될만한 의견을 던지셨죠. 아마 다 합쳐봐야 너덧가지의 피드백이나 되었을까요. 돌이켜보면 저 혼자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나자빠지고, 충분히 다시 쓸 수 있게 공간을 열어주는 방식을 취하셨던 것 같아요. 빅픽쳐 였구나, 그렇구나..
“나의 이야기로 쓰세요.”
글이 자꾸 레시피 북이 되고 있는 시점이었거든요 1. 기름에 마늘을 볶는다. 처럼 1. 자비 명상을 한다. 이렇게 ‘어떻게’를 쓰고 싶었어요. 레시피를 쓰다보니 뜻하지 않게 자꾸 진지해지고 무거워졌고요. 그런데 세상에 좋은 레시피도, 레시피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고, 정답 처럼 쓰인 레시피는 많지만 정답은 없다는 게 진실이잖아요. 사실 레시피를 쓰게 된다는 건 글에서 숨을 곳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답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굉장한 반감을 느끼거든요."
중요한 건 어쨌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엉덩이를 떼고 요리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내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숨어서 쓴 글을 모조리 건져내서, 나의 이야기로 고쳐쓰고, 또 한번 고쳐썼어요. 에세이에는 쓰는 사람이 숨을 곳이 없었고, 뒤집어 말하면 숨지 않아야 좋은 에세이가 되더라고요. 나를 전면에 드러낼 많은 용기와 내면의 윽박지름(?)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지언을 이렇게 만났을 때 느끼는 매력도가 10이라면, 글에 담기는 지언은 6정도예요. 나는 이걸 문제라고 봐요. 어떤 사람의 글은 진짜 그 사람보다 매력적일 때도 있어요. 글로 읽으면 만나보고 싶은데, 실제로 보면 좀 다른 느낌인.”
어떤 문장은 어색해요, 혹은 여기에 띄어쓰기는 이렇게 하고, ‘그러니까’를 추가하는 게 좋겠어요, 같은 피드백은 어떤 편집자에게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저 피드백은 흔히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은 아닐테고요. 함께 작업한 편집자님이 저를 10년 이상 가까이서 봐온 분이었기 때문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죠.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굳이 쪼갠다면 말투와 내용이 있을텐데요. 말투는 일단 매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 같긴 해요. 말투가 너무 고압적이거나 지나치게 진지하면, 매력도가 떨어지죠. 그렇다고 내가 재밌는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엄청 신랄하고 발랄하게 글을 짜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아니라서 고민이 좀 되더라고요. 일부러 유려한 표현을 쓰려 하니 평소에 입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요. 그래서 그냥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입말로 바꿔서 쓰려고 애썼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매력적인 사람이려고 할수록 매력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건 모두에게 매력적이고, 도덕적으로 옳으려고 하면 할수록 방어적인 글이 되어서가 아닐까 해요. 어차피 아무리 애써도 모두의 아군일수는 없고요. 모두에게 아군이라면 챗GPT? 그래서 무엇보다 그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바가 또렷하게 와닿았으면 했어요.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고'와 같은 형태로 내 입장을 희석하려는 문장들은 지우고 조금 더 자신있게 내 입장을 드러내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나를 만나고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낄 사람이라면, 내 글을 만나도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가이드라인으로 갖고 또다시 원고를 읽어보니 다르게 읽히더군요. 어떤 부분은 실제 저에 비해서 너무 강압적이거나,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고, 어떤 부분은 실제 제 입장보다 훨씬 부드럽게 쓰인 것도 있었고, 때로는 꼭 하고 싶었던 말인데 원고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에 밟히는 부분을 찬찬히 고치고 나니 글이 이전보다 나아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인 피드백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비로소(?) 원고를 다시 읽기가 덜 짜증스러웠기 때문에.. 하하. 제 글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는 게 그렇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5. 맛집 추천 강요
요즘 프렌치토스트에 빠졌어요. 프렌치토스트라는 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건지(!!!!왜 말 안 해줬어요!!) 처음 알았거든요.. 그걸 알게 해준 건 연남동의 '조앤도슨'(별표 세 개)이라는 곳이에요. 폭신하고,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축축하지 않은, 정말 완벽한 프렌치토스트를 파는 곳이죠. 문제는 웨이팅이 기본 두세시간이라는 거였어요.
매번 두세시간씩 조앤도슨에 매달릴 수는 없으니 프렌치토스트 레시피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꽤 괜찮아보이는 프렌치토스트 만들기 팁도 찾았어요. 이를테면 노른자만 쓰라는 것, 거기에다가 하프앤하프(우유와 생크림을 반반 섞은 것)을 넣으라는 것, 마지막에 설탕으로 코팅을 하는 방법 같은 것들요. 아래에 링크를 걸어둘테니 한번 살펴보세요. 다음 주말에는 우리 프렌치토스트 해먹어요.
(혹시 이것보다 더 나은 프렌치토스트 레시피가 있다면 대환영입니다. 꼭 알려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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