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겁도 없이 주 60시간을 일했다. 이 압도적인 업무 시간 자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 속으로 나를 내몰며 살았던 흔적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동안 자주 무리하고, 상처 입고, 위축됐다. 도전과 실패가 반복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축났다. 목이 아플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심각한 두통이 찾아왔다. 한껏 예민해져서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 대중 교통에서의 무례한 제스처, 가까운 사람들의 맞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일이 휘청거렸다. 그런 상태로도 어찌됐든 꾸역꾸역 일했다. 업무량이 많지 않다는 핑계, 이만하면 다들 버틴다는 핑계로 내 상태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황당하게 느껴지곤 한다. 몇 년 동안 내 삶을 통째로 바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라면, 사실은 나에게 굉장히 무리한 목표를 설정한 게 아닌가. 도망치면 되지 않나.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할만큼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비대해져 있었다. 한번도 내가 정해둔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어서 잘하고 있는 때에도 잘하고 있는 줄 몰랐다. 지금 와서 누가 ‘20대를 잘 보냈니?’ 물어본다면 ‘그만 하면 잘 살았습니다!’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20대였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걸 성장의 레시피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크든 작든 목표에 닿는 것, 그것을 충분히 누리고 만족하는 것, 그렇게 얻은 단단함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과제로부터 도망치는 요령이 필요했다. 도망쳐서는 나아갈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불안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었다. 나아가기 위해서 도망가야 할 때도 얼마든지 있었다.
도망친 동안 이제까지 제대로 읽지도, 덮지도 않고 지나쳐왔던 내 이야기들을 다시 들춰봤다. 그리고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내게 이런 일들이 있었고, 나는 그때 이렇게 느꼈고, 나한테는 이런 의미가 있었다고 썼다. 그렇게 내 마음 책장 어딘가에 한권씩 신중을 기울여 꽂아두었다.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을 보고 나서야 나에게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망치는 건 분명 겸허해지는 경험이었지만, 그 때문에 결코 절망하거나 쪼그라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망치고 난 후로 나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
도망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두려울 때일수록 도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망치기 전에는 손가락 마디 마디가 하얘질만큼 주먹을 힘껏 쥐어야 하는 법이다. 필요하다면 두 주먹을 꽉 쥐고 도망치면 좋겠다. 도망은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니까. 도망치고 나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볼 때가 오면 그때는 내가 해볼만한 일, 나에게 아주 조금 버겁지만 가슴 뛰는 일에 다시 도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