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나 지금 너를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B: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칼이라도 쥐고 있음 몰라.”
두 사람은 다른 안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 느껴지시나요?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건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과는 아주 달라요. 현실적으로는 안전해도 심리적으로는 안전하지 않게 느낄 수 있어요.
강아지가 집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향해서 ‘왕왕!!’하고 짖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실제로 내게는 아무런 위협이 없지만 갑자기 심장이 뛰면서 예민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낮고 큰 소리는 우리 몸에 포식자의 소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어느 날 버스의 웅웅 거리는 진동이 불쾌하게 느껴지고, 사람들의 사소한 무례함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때가 있을지도 몰라요.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위협하는 내용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믿을 수 없다!’ ‘나를 드러내서는 안 되겠다’ 이런 불편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거예요. 내 마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신경계는 실제로 안전한 상황에서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곤 해요.
사람의 몸은요. 늘상 ‘날 둘러싼 이 환경이 안전한가?이 사람이 안전한가? 이 존재가 안전한가?’를 판단하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 뇌가 아니라 몸이 이미 위협을 감지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머리(뇌)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미주신경계)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거죠. 미국에는 gut feeling이라는 말이 있어요. 거칠게 번역한다면 내장의 느낌이죠. ‘이 사람이 왜 싫어?’ 물어봤는데 ‘그냥 온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럴 때 있잖아요. 안전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빠르게,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어쩌면 다소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요. 이때 장기에서 쏘아올린 ‘위험하다!’는 메시지는 곧바로 뇌로 전달됩니다.
우리의 신경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알람을 울리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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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적으로 몸에서 굉장히 다양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아드레날린, 코티솔이 분비되고, 과호흡이 일어나는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고, 거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면 오히려 심박수나 혈압이 낮아지기도 해요. 이런 몸의 반응이 계속 이어지면 여러가지 건강 문제가 빚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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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지 않을 때는 합리적인 사고가 어려워져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잖아요. 인지적인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나답지 않은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지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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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도 영향을 받아요. 함께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거나, 공격적이거나 통제적인 행동이 나와서 소통이 어려워진 경험이 있을 거예요. 대체 왜 이렇게 전파가 빠르냐고요. 안전 시그널을 잘 캐치하는 건 누구에게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나의 신경계가 지금 이 상황을 안전하게 여기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나도 모르게 시도때도 없이 작동해온 이 안전 시스템이 얼마나 내 삶을 쥐고 흔들었는지 알면 당황하실 걸요.
문제를 해결하려고 밤을 새고 매달리는 사람과 문제를 회피하고 전혀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하면 어떨까요? 둘다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차분하고 명료하게 대화하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에는 강력한 전파력이 있어서 한 명만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도 금방 대화의 벽이 생기곤 하죠.
그래서 안전을 이해하고, 자신의 상태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해요. 서로가 안전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그때는 제안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 안전을 되찾자고요. 차분하게 나를 가라앉히고 서로 합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