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와의 8문8답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8문8답
** 질문자는 편집자 선생님
- 첫 글 ‘기분 좋음의 함정’부터 무언가 들킨 것 같았어요.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집착, 기분이 대단히 좋은 상태가 따로 있을 거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충격이었어요. 맞아, 그랬구나 싶었어요. 깨닫지 못했던 비밀을 안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셨군요! 제가 처음에 이 원고를 쓸 때 어딘지 화나있는 것 같다(;;)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만큼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좀 뜬금없는 소리지만, 기분 좋음의 함정을 설명할 때 우리나라와 동남아의 여름을 비교하는 것만큼 확 와닿는 비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가 동남아 나라보다 더 덥지는 않잖아요. 아무래도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곳은 우리나라보다 여름 나기가 훨씬 힘들겠죠. 더 덥고 더 습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름 나는 게 더 힘들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어디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데, 문을 열고 나오면 상대적으로 그 낙차때문에 엄청 덥고 괴롭게 느껴지잖아요. 거의 완벽하게 쾌적한 공간에 있다보니, 거기에 기대치가 설정되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워져도 견딜 수 없이 괴롭죠. 그런데 동남아의 작은 마을에 여행 가보면 하루종일 더운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날씨 때문에 우리만큼 괴로워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거든요. 비슷한 더위여도, 어디에 내 기대치가 설정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만족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완벽한 온도가 늘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지만, 에어컨 없는 삶에 적응한 사람들은 여름의 높은 온도와 습도와 꽤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거든요. '땀 좀 나도 괜찮아! 자기 전에 샤워하면 시원하겠군.' 정도의 마음인 것 같아요. 말끔하고 완벽한 상태를 당연한 기대치로 두지 않는다면, 지금도 꽤 괜찮은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거 아닐까요. 하루 아침에 세상의 에어콘이 모두 사라진다면 오히려 여름 나기가 수월할 지도 몰라요. 에어컨 끄고 5분만 지나면 '덥다~ 덥다~' 노래하는 영은이 엄청 싫어하겠지만..
- 마찬가지로 대단한 일을 해내는 어떤 시기가 따로 있지 않다는 말도 그랬어요. 한 방이 있을 거라는 착각.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꿈꾸는 거겠지요.
멀리서 바라보는 타인의 한 방은 강력한 것 같아요. 인터넷 기사에서 로또 1등에 다섯 번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도 한번 사봐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처럼요. 그런데 그런 극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인의 빛나는 순간에는 사진 한 장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와 피땀눈물이 있더라고요. 대단한 일을 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그때가 참 빛나는 시기였구나, 하고 느끼기도 하더라고요. 쉽고 빠른 길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게 속담처럼 당연한 말로만 들릴 때도 있었거든요. 잘 몰랐던 거죠. 당연하게 들리는 말들의 진짜 의미는 적절한 시기가 되어야 와닿는 것 같더라고요. 청소도 하루 아침에 완벽하게 하려고 하니까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일이 엄청 많아요. 걸레받이 위에 먼지도 걷어내야 되고, 창틀도 닦아야 되고. 청소만 해도 하루아침에 안 되는데, 원하는 일이 어떤 대단한 한방으로 단번에 이루어질 것 같다는 건 환상이죠, 뭐. 주변에 사람들 살아가는 걸 보면 다들 그냥 매일 눈에 보이는 만큼 비질을 하는 것 같아요. 뒤돌아보면, 이렇게 많이 왔구나 하는 날이 오겠죠.
- 과거에 얽매이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만 기대다 보면 현재를 쉽게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알면서도 현재에 집중하기가 어려운데 왜 그런 걸까요?
그런 하드웨어를 우리가 갖고 태어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진화적으로요. 생각해보면 현재에 집중하고, 이 순간의 경험을 음미하고, 낙관하는 종류의 사람들보다는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에 있었던 문제를 회상하고, 새로운 전략을 짜는 사람들이 살아남았겠죠. 우리 뇌는 '생존'에 포커스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 관점에서는 조금 불리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뇌에는 DMN이라고 해서 어떤 일에 정신적으로 몰두하고 있지 않을 때 탁 켜지는 회로가 있는데요. 그때 생각이 여기저기 떠돌고, 과거와 미래를 막 넘나들어요. 생각이 떠도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쉽게 우울해져요. 생각이 여기저기로 떠도는 게 정신 건강에는 꽤 해로운 거죠. 저처럼 생각 속을 자꾸 헤엄치는 분들은 의식적으로 이 모드에서 벗어나는 건강한 방법들을 강구하면 좋아요.
-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조사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고 해요. 직업적 성취나 인간관계를 꼽은 비중도 낮고, 취미를 꼽은 비중도 최하위였다고 하는데요. 책에서는 일상에서의 기쁨과 행복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해요. 머리로는 그렇겠구나 싶으면서도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인 거 같아요.
그러게요.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은 세대가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이 물질적 풍요라고 말하는 현상이요. 저희 세대의 부모 역시 어떻게든 먹고 살게 한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양육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양육의 목표는 아이가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 생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에는 단순히 돈만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돈이 사람을 살아있게 하지만, 단순히 살아있는 게 잘 사는 건 아니니까요. 1) 어려운 일들을 잘 헤쳐나가면서 2) 재밌게 3) 밥 벌어먹고 살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우리는 3번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사실 산다는 게 어느 순간 되게 재미없어지기도 하는데, 어려서부터 재미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재밌게 살아봤어야 재미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어른들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왔고, 그런 가치관이 지금 이 순간에도 대물림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솔직히 재미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어요. 재미있게 살려면 돈만 필요한 게 아니라 문화적인 자원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림을 보는 재미,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재미를 더 잘 느끼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자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미하고, 감탄하고, 감사하고. 그런 게 일상에서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일인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기술들이 같은 경험을 해도 기쁨을 두 배, 세 배로 키워주더라고요. 저는 일상을 풍요롭게 사는 일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기쁨을 뒤로 미루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 ‘자연의 성장곡선’이라는 글에서 “떨어지면 죽을 거 같다”는 말이 와 닿았어요. 날기 위해 떨어지는 건데 떨어질 때는 절대 날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요. 직접 경험한 데서 오는 감정 같았어요. 작가님도 그렇게 느끼셨나요.
늘 두려워요. 안전지대를 벗어난다는 건 죽도록 괴로운 일 같아요. 막상 행동으로 옮기면서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싶고, 어제로 돌아가 결정을 번복하고 싶어지잖아요. 동기를 까맣게 잊어버려요. 그런데 시작했던 이유로 돌아가보면 다 나 잘 살자고, 성장하자고 하는 일들이더라고요? 바보같은 사이클의 반복입니다.. 저는 소심한 편이에요. 고객분들께 전화를 하게 될 때 있잖아요? 그럴 때도 일일이 긴장해요. 순간적으로 두려워요. 근데 막상 전화해보면 별일 없거든요. 그래도 전화기 들기 직전에는 침이 마른단 말이죠. 실체없는 두려움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숨 한 번 쉬면서 물어봐요. 이 두려움에 실체가 있나? 그닥 없는데, 하면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될 때도 있어요.
- 마지막에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는다’는 글이 인상적이에요. ‘못 하겠어요’라는 글도 그렇고요. 멈춘다거나 그만둔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못한 거 같아요. 스스로 그만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러고 보니 ‘못 하겠어요’가 '자! 다시 시작해보자'는 느낌으로 읽혔음)
무엇이든 '그만한다'는 상상은 강력한 현실 직시의 도구 같아요. 현실 직시를 미루면 커리어든 관계든 산으로 가기도 하더라고요. 장례식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내 삶이 다시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 지금 맺고 있는 관계의 끝은 까맣게 잊고 있던 일과 관계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던 목표나 어떤 생각을 내려놓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원래 두려운 생각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도망가려는 습성이 있잖아요. 엇비슷한 생각만 올라와도 고개를 흔들면서 털어내버리는 게 인간이죠. 그런데 두려운 생각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나면 미룰 때보다 모든 방면에서 나아지더라고요. 안 좋을 게 없던데요. 신기하게 오히려 힘이 생겨요. 그제서야 다른 방법도 있잖아? 하고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실제로 브레이크를 밟아보니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조금 더 수월하게 브레이크 위에 발을 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글에서 치열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단순히 아는 것을 전하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걸 적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장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책인데 이번 글을 쓰면서 어떤 경험이었는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건 생각이 아니라 경험담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경험하지 않은 통찰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쓰기로 마음 먹었어요. 경험을 써보자, 하고 막상 과거를 돌아보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야깃거리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너무 많았다고 할 정도로요. 매일 좋은 책의 글귀를 소개하는 메시지도 매일 보내보고, 팟캐스트도 해보고, 80명 정도의 청년을 만나 인터뷰도 해보고, 도시락 배달도 해보고. 커뮤니티, 공간, 앱 서비스, 심지어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품도 만들어봤더라고요(;;) 아까 날기 위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 많이 떨어져본 것 같기는 해요. 책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건 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어요. 저와의 관계가 개선된 거죠. 제 이야기를 제가 다시 들어주고, 느껴보고, 경험을 글로 정리하면서 저부터도 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저를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편인데, 에세이집을 낸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굉장히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한켠으로는 또 한번 (체감상)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죽지는 않았으니까 날아올랐다고 생각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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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김지언 | jiun@wa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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