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떻게 일을 시키냐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사람인데, 슬프게도 회사가 나를 부리는(?) 그 과정에서 '흑화'했다. 마지막 근무 날에도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느라 야근을 했다. 오프라인 행사에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반쯤 남은 맥주잔을 비우고, 의자를 정리했다. 슬슬 퇴근을 준비하는데, 대표님은 가려는 나를 붙잡고 이런 말을 남겼다. "사무실 들릴거지?" "네? 이제 퇴근하려고 하는데요." "여기 가위 있잖아요. 가위 두고 가야지. 너 아니면 누가 해?" 밤 12시에 회사에 가위, 테이프를 사물함에 넣어두고 회사 빌딩을 박차고 나오면서는, 분노가 들끓었다. 퇴사한 다음 날 씁쓸한 마음으로 월급 통장을 다시 열어봤다. 이제까지 번 액수가 너무 귀여워서(?) 이 돈과 맞바꾼 내 시간과 건강이 상대적으로 웅장해보였다.
이런 회사 생활이 나뿐이겠는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꾸준히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가, 여기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합리적인가. 질문하다 보면 이중에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는 일터가 마땅치 않다. 많은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교육시킬 여유가 없다며 완성된 인재로 입사하기를 바라고, 미완성의 인재들을 채용하는 공고가 떠서 자세히 살펴보면 소진되는 반복적 업무만이 쓰여져 있었다. 맨날 세상 탓만 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생각의 끝에는 지금이라도 의대에 가자! 지금이라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자! 전문성 확보를 위해 유학을 가자! 같은 몇 갈래의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
= 혼란의 도가니
이제까지 회사들이 갓 입사한 새로운 세대의 청년들을 'MZ스럽다'며 외계인 취급하는 동안 앞으로 회사를 짊어지고 가야할 이들은 회사를 실질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떠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이 보기에는 어린 농구 선수들이 훈련에 헌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가족이나 풍요로운 일상처럼)을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경제적 수입원으로 활용한다는 관점 아래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마이클 조던처럼 성과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식일 수도 있다. 많은 회사가 이들의 삶에서 일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놓치고 있고, 그들을 판단하기에 앞서 질문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해서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회사가 이들이 떠나도록 만드는 측면이 있다.
30대에 회사를 떠나 의대, 교대, 한의대 가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주변에는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고, 돈이 필요할 때 회사에 잠깐 다녔다가, 6개월에서 1년 정도 돈을 벌고 다시 나와서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중에는 생활비를 코인이나 주식으로 버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노동으로 버는 수익은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 대비 너무 적은데 반해서 돈을 굴려서 버는 자산 소득이 불어나는 건 쉽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MZ는 참 인내심이 없지.." "그런 돈에 맛들이는 거 아니다"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회사 밖에서 살아갈 다른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2. 리스크가 있으니까 아웃풋을 기대할 수 있는 건데
사회에 나오자마자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 속에서 진로를 찾고 대학에 가고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일의 선택지가 그다지 넓지 않다. 결과가 확실하고 '안전 보장' 스티커가 붙은 선택지가 다양할 수 있을까. 남들이 간 길이어야 하고, 잘 닦여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자체가 이미 선택지를 확 줄인다. 게다가 그런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경쟁이 심화되는 악순환이다.
언젠가부터는 리스크 테이킹 없이 확실한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게 아닐까? 리스크테이킹 없이 아웃풋을 낸다는 건 머릿 속으로만 가능하고 현실에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무슨 길이든 리스크가 있고,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감당한 채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닌지?
지난 번에 북토크를 앞두고 일토 출판사 대표님과 대화하다가 보수적인 소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잘자잘한 소비마저도 점점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매장에 가거나, 내가 이제까지 가던 곳, 확실하게 검증된 곳에 가지,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는 쉽게 도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1등 가게는 살아남겠지만, 2등, 3등만 해도 망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과감한 소비는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없는 돈 쪼개어 쓰는 형국에 애먼 돈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가 돈을 쓰는 곳이 누군가의 일터라고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멀리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조금 위험을 짊어지고 소비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 혹은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리스크를 짊어지는 선택이 조금씩 쌓이면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길도 넓어지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춘천 여행에서 재밌는 장소를 추천받아 다녀왔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이름을 딴 ' 상우'라는 작은 가게였는데, '앰비언트' 장르의 LP와 CD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커피도 판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감각적인 공간에서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을 하고 나왔다. 서울이라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아주 취향이 확고한 공간이더라도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텐데, 춘천에서 이렇게 매니악하고 니치한 가게를 운영하는 건 엄청난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게 아닐까. 이 주인장 언니가 용기 있게 이 가게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이런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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