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잘 주무세요?”
심리 상담 첫날, 선생님께 받은 첫 질문이었다. 그날 내가 너무 많이 자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는 날이 많았다. 과도한 수면은 부족한 수면만큼이나 좋지 않은 신호였지만 그때는 잠을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계속 피곤하다는 이유로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것을 정당화했다. 잠이야말로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로 여기면서 말이다. 상담 이후 정신과를 찾게 되었고 우울증 약을 처방 받았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수면은 신호다. 최근에 왈이네를 찾아오시는 분들께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바로 “잠은 잘 주무세요?”다. 수면 시간이 적당하지 않거나 패턴이 불규칙한 편일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살피려고 한다. 몸과 마음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을 때 수면은 더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요즘 잘 못 잔다는 친구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아서 통화를 걸었다. 잠을 잘 자기 위해 암막 커튼을 설치하고 베개에 뿌리는 아로마 스프레이도 샀다고 한다. 잠을 문제로 정의하게 되면 잠을 고치려고 하지만, 잠을 신호로 인지하면 요즘 내 컨디션과 상황을 살피게 된다.
지난달부터 구체적인 지표로 컨디션 관리를 시작했다. 크게는 소화, 호흡, 수면, 활동량으로 구분하고 구체적으로는 식사 수, 식사 속도, 특정 음식, 소화 상태, 용변 상태를 체크한다. 흉곽 움직임과 수면 시간, 걸음 수, 통증 부위 등을 기록하고 종합해서 컨디션 점수를 매긴다. 대체로 수면 시간은 일정하나 수면의 질이 불규칙했다. 수면의 질은 소화 상태와 활동량에 따라 크게 바뀌었다. 육류를 섭취하면 속이 불편했고 수면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통증이 생길 정도로 과하게 운동을 한 날에도 선잠을 잤다. 수면을 중심으로 몸이 보내는 신호가 정말 많았다. 그때부터 채소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적당한 강도로만 운동을 했다. 식단과 활동량을 잘 지켜도 스트레스가 많았던 기간에는 다시 수면이 흔들렸다.
잠을 잘 자기 위해 잠만 잘 자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고 숨을 잘 쉬는지 살피며 매일 만 보 정도 걷는다.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할 때도 단호하게 나를 지키면서 다정하게 수습하려고한다. 알람 없이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이면 잠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잘하고 있어~!
아이유는 한 시상식에서 “모두가 잘 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곤히 잘 잤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그렇게 큰 말은 아니지만 제 입장에선 정말 공들인 고백이다.”라고 덧붙였다. '잠은 잘 주무세요?' 선생님의 질문을 자주 떠올린다. 그러면 내 삶을 뭉뚱그려 보지 않고 한 조각 한 조각 섬세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어젯밤 지언의 방문 틈 사이로 ‘잘 자’라고 전하면서 하루에 딱 한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그 말을 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