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업체 때문에 힘들어.”
날이 너무 덥다, 수영장에서는 무례한 아주머니를 만나 괴로웠다, 협업 과정이 힘들다,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어쩐지 점점 영은이 선을 넘는 느낌이 들었다.
“그 힘들다는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돼?”
내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 만큼 너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불평불만 하는 걸 듣기가 당연히 괴롭지' 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그의 부정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가 나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게 잘못일까?
모두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소소한 불평불만은 전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같이 킬킬거리고 웃어넘길 일인지도 몰랐다.
영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던 게 아니고, 그냥 그 이야기를 너한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돼서 이야기한 거거든. 네가 무슨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후련해져.”
문득 가까운 이의 ‘힘들다'는 말은, 나의 번역기를 통과하면 ‘해결해 줘'라는 말로 들렸던 것도 같았다. 그의 몫을 내 몫으로 떠넘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의 힘든 마음들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건 내가 그의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너는 힘들다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네가 힘들다고 하면 해결을 요구하는 건 줄 알았어. 이건 내 쪽의 이슈인 것 같아. 너한테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는 건 부당한 것 같네. 사실 나 스스로한테도 나는 그런 말을 해왔거든. 자꾸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고. 어쩌면 나도 힘들 때 힘듦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지치지 않고 마음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각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구나. 그날 알았다.
누구나 그렇듯 과거의 몇몇 경험에서 상처받았고, 그때의 상처는 독특한 흉터를 남겼다. 나에게는 특정한 마음의 옹이가, 영은에게는 영은만의 옹이가 있어서 가끔씩 서로의 옹이가 건드려질 때면 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예외 없이 참 아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갑자기 혼란 속에 빠져버리기도 하는 걸 이제는 알아서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거쳐 굽이 굽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도 이만치 왔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만으로 결혼 상대를 고르는 TV쇼가 있다. 미국 편에 이어, 일본 편도 나왔을 만큼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데 새로운 시즌이 나왔다는 소식에 넷플릭스를 켰다. 본격 데이트 시작 전 PD가 질문을 던졌다.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 건가요?”
한 참여자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심리상담(therapy)을 받아봤는지 물어봐야죠.”
옆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이 깔깔거리며 손뼉을 쳤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우리나라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저런 대답 비슷한 것이라도 언제쯤 들어볼 수 있으려나.
우리나라라면 오히려 심리상담을 받지 않은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유약한 사람, 혹은 별난 사람처럼 여기는 이들도 많다. ‘결국에는 문제가 있으니까 저런 걸 하는 거 아니야?’라는 시선도 있다. 하하.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심리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싶다. 내 보기엔 심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사람과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람이 연속체 상에 있다면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가 있는 이들로, 특히 없다는 쪽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조금 더 문제적이라고 본다.
심리상담을 받아봤다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왜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상담 여부가 어떤 결과를 담보하진 않지만, 심리상담의 여부가 어떤 사람이겠거니 하는 기대를 불러와서가 아닐까. 하나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일 거라는 기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가 아닐까. 내 마음을 말해도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사람 말이다.
그럼 결혼 상대까지 갈 것도 없지 않나. 곁을 그런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