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우면 이따금 떠오르는, 따끔한 말들이 있었다.
1
1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30분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들 만큼 통증이 심했던 시기였다. 이제껏 애정을 다해 참여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 모임에 갔고, 엎드려서 내 상태를 고백했다.
“앞으로는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두통이 심해져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요.” “아.. 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너무 건강을 과신했던 거 아니에요?”
“과신…”
순간적으로 그의 근심 어린 표정과 뾰족한 질문이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왔다. 어떻게 느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로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2
지난여름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를 발간하고 처음으로 독자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함께 작업한 편집자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선생님과는 미리 대흥역 부근의 맛집에서 든든하게 쌀국수를 챙겨 먹고, 북토크 용이라며 일부러 만들어오신 포스터를 가게 문 앞에 함께 붙였다.
선생님은 시작을 앞두고 나에게 물었다.
“왜 작년에 넘어지는 일을 겪었을까요.”
“글쎄요..”
“마음 단련이 부족했던 게 아닐지.”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멀리서 찾아와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침묵은 선물 같았다. 10명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 어디에 밑줄을 그었는지 나눴다.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내내 내 마음의 일부는 앞선 말 한마디에 고여 있었다.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왜 아팠니'라는 질문은 내겐 고통을 나누려는 따스한 제스처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는 나는 아플 수도 없구나!’라는 상념에 빠져 스스로 더 아프게 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내 마음의 이름표는 ‘서글픔’이었다. 그 말들을 들었을 때 나는 참 서글펐다. 다음 날 영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우스갯소리로 마음의 딜레이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핀잔을 줬다.
“그때 그 말의 의도가 뭐냐고, 왜 안 물어봤어? 일단 그 말이 아프게 느껴진다고 말하지.” “음…. 그때는 그 말이 나한테 왜 아픈지, 아니 그렇게 아픈지도 몰랐어. 그냥 혼란스러웠어.”
처음에는 소심한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바로 잡고 싶었고, 때로는 변명하고 싶었고, 언젠가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든 손톱 위의 거스러미같이 생생한 불편감을 주는 마음들이었다.
거스러미는 어떤가. 약간이라고는 해도 그 조그만 부위에서 오는 통증은 촘촘히, 구체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막상 거스러미가 아물고 손이 깨끗해졌을 때 아픔이 사라졌다는 걸 곧장 인식할 수 있나? 거스러미가 사라지면 한 번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처럼 편안함에 곧장 익숙해졌다.
시간이 흘러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는 딱지가 앉았고, 가슴에 얹혔던 말들이 천천히 소화됐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불편함이 싹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해줬던 말이 다르게 다가와 글을 쓰고 싶어진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마음이 건강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은 업무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하고 싶지도 않을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 속에서 이 일을 계속 해도 된다는 누군가의 허락, 혹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고 싶어서 절박한 마음으로 용을 쓰고 있었다.
내 마음과 멀어져 있던 그 거리만큼, 내 몸과 멀어져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근력 운동과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지, 같은 시간에 자기 위해 샤워를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가 신체의 건강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내 몸을 돌보는 일은 어디까지나 조건적이고 제한적이었다. ‘그래, 그래. 알겠어. 괜찮아. 그런데 여기까지만.’ 더 나빠지지 않는 데 도움은 되었겠지만, 나를 돌보는 일에서조차 쫓기고 있었고 그걸 사람들은 스트레스라고 불렀다.
어쩌면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였다.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금한 프로젝트를 멈춘다는 것이, 우리 팀이 나로 인해 무언가를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로 여겨지지 않았다. 앉아 있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멈춰야겠다는 자각이 겨우 생겨났다.
가까운 사람들에겐 내가 어떤 상태인지 너무 명명백백하게 눈에 보였을까. 그들은 나에게 실은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나 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면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일단은 좀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마음이 좋아졌다는 걸 어떻게 알지?’
왈이네를 만들고 나서는 늘 마음의 성장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마치 몸무게 판 위에 오르면 소수점 두 자리까지 숫자로 나타나듯이 마음도 선명하게 드러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답은 모르고 그 질문 주위만 뱅뱅 돌았다. 심리 상담 센터나 병원에서 하듯 자가 보고식 설문으로 측정해야 하나? 혹은 일주일 중 더 많은 순간에 그저 기분이 좋아지면 되는 건가. 어쩌면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건강함'을 분명하게 가리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동안 나를 관찰하면서, 마음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몸의 건강 신호와 일에서의 성과, 그 두 가지면 됐다.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마음이 건강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은 몸의 건강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묘하게 더 소화가 잘되고, 잠이 잘 오고, 조금 기력이 생기고, 중간에 깨는 일이 줄고, 전반적으로 혈색이 나아지고, 숨이 잘 쉬어졌다. 어떤 비타민제 광고처럼 “꾸준히 6개월 정도 드시면 점점 효과를 느끼실 거예요.”는 반쯤 틀린 말이었다. 변화는 작지만 빠르게 나타났다.
두번째는 일에서의 성과였다.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진전되는 게 눈에 보였다. 일에 집중이 잘 되는 것은 둘째 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구분하는 것이 순조로워졌다.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불안으로 소진되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조금 더 속도 있게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다시 말끝을 흐렸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을까.
“네, 사실은 마음 수련이 부족했고, 나의 건강을 과신한 측면이 있었나 봐요. 지금도 마음 수련은 부족하고, 지금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아프고 부족한 채로도 저를 너무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만큼은 단단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