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홍게 좋아해?”
몇 주 전에 엄마가 보내준 제철 홍게를 지언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게 손질은 둘 다 처음이었는데 유튜브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살을 야무지게 발라 먹었더니 한 번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긴 것과는 별개로 사실 게를 먹으려면 한 시간 정도 노동을 해야 했지만 “없어서 못 먹지~”하는 솔을 위해 기꺼이 하고 싶었다.
“이제 솔이랑도 거의 10년 됐구나.”
게를 기다리며 지언과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20대 초반에 만난 우리 셋은 이제 모두 30대다. 같은 회사 동료로 처음 만나 함께 창업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 셋이 있으니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을 같이 보냈고, 꼬물꼬물 좋아하는 것을 같이 만들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 셋의 나란한 발걸음은 2018년 겨울에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때 나는 늘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처음 두발자전거를 타는 사람처럼 자꾸만 고꾸라졌다. 까진 무릎을 보며 사라진 바퀴 탓을 하기도 했다. 솔이 다른 회사에 가는 것이 분명히 더 좋은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 아팠다. 그해 겨울은 휴지 산을 쌓으며 울었다.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만큼 눈물이 났다. 누구도 상처 내려고 한 적 없지만 스칠 때마다 아팠다. 뗄 수 없을 것 같던 발을 천천히 떼보고 다시 앞으로 내려놓으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어느 개그맨의 결혼 발표를 인상 깊게 봤다. 이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상대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삶이 아니라 홀로 완전하기에 함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부엌에서 홍게를 까며 생각했다. 솔이랑 동료로서 이별하던 날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은, 그때 우리가 혼자서는 불완전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로에게 기대어져 있던 지지대를 치우던 순간은 분명 아팠지만, 그렇게 우리가 홀로 완전해지는 연습을 한 것 아닐까.
푸지게 홍게를 먹고 함께 저녁 요가를 하러 갔다. 이렇게 많이 먹고 요가해도 되는 거냐고 깔깔 웃으며 요가원 앞에서 팔 벌려 뛰기를 했다. 따스하게 데워진 바닥에 매트 세 개를 나란히 깔았다. 서로 눈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숨이 거칠어지면 약속한 듯 잠시 기다려주었다. 한 발 서기 자세에서 솔이 균형을 잃고 흔들리자, 선생님이 “멀리 보세요. 멀리 보면 덜 흔들려요”라고 하셨다. 세 사람 모두 조금 더 멀리 시선을 두었다. 작은 떨림은 남았지만 격렬한 흔들림이 잦아들었다. 불이 꺼지고 고요함으로 가득 찬 매트 위에서 마지막 사바사나를 했다. 그동안 솔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어려웠던 20대 시절에 나의 미숙함으로 솔에게 상처줬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면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감정이 너무 커서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쏟아내듯 쓴 편지는 주지도 못했다. 송장 자세 속에서 과거의 감정이 충분히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좋은 환경에서는 사랑과 좌절 그리고 증오스러운 파괴와 회복이 순환된다. 이러한 순환을 통해 유・아동은 자신의 치유 능력과 파괴성을 조정하며 보상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프로이트 이후 - 현대정신분석학의 흐름> 중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슴 앞에 합장했다. 나 자신을 위해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왼쪽으로 몸을 돌려 솔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마스떼—.’ 그동안 회복하느라 참 고생 많았어. 나는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됐어. 너와 함께라면 몇 번이고 관계의 순환을 돌고 싶어. 미안하다는 말이 사라진 자리에 사랑의 말이 두둥실 떠올랐다. 요가원에서 걸어 나오며 마지막에 흘러나온 음악을 따라 불렀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