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다의 새로운 필진을 소개합니다 현우의 일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애써 성장을 추구하는 편이 아니다보니, ‘2023 힘이 되는 성장의 말들'이라는 주제에 어떠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떨까. 2023 힘이 되는 말들. 이또한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힘들었던 순간이 없었는지 아니면 힘이 되는 말들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렇게 바꿔볼까. 2023 내 안에 남은 말들. 그제야 한 문장이 툭, 떠오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
‘성장'과는 거리가 퍽 멀어보이는 이 말은 비욘 나티고 린데블라드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천천히 되뇌였다. 그러면 ‘내가 옳다'는 딱딱한 마음은 조금씩 말랑해졌고, 어깨에 한껏 서린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그리곤 나지막이 이렇게 읊조렸다. ‘그래, 내가 틀릴 수도 있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되새기는 건 누군가와 함께 살 때 큰 힘이 된다. 혼자 살면 뭐든지 내 좋을대로 하면 되지만, 함께 사는 건 빨래를 개는 모양부터 오늘은 뭘 먹을지까지 의견을 맞추는 일의 연속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문제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들이 있다. 이를테면 냉장고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
나와 하윤은 서울에서 동해로 이사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다툼에 이름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냉장고 토론.’ 지금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 냉장고를 여기에 두는 게 맞는지, 저기에 두는 게 맞는지 한껏 실랑이를 하다가 서로 기분만 상한 채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누구의 의견을 따른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냉장고를 거기에 두었다는 것만 기억이 날 뿐.
아무튼, 내 의견을 말하고 하윤의 의견도 충분히 듣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고집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지 고집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도 사소한 문제들 앞에서 ‘저렇게 하는 것보다 내 방식대로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입을 꾹닫고 잠시 기다려보면 하윤의 방식도 괜찮다는 걸, 때로는 더 좋다는 걸 배울 때가 많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말이 성장과는 거리가 퍽 멀어보였는데,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것만큼 큰 성장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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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의 일기 난 용감하고 상처도 많지
“난 용감하고 상처도 많지. 난 내가 자랑스러워. 이게 나니까.”
“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
친구는 이 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제는 나도 옆에서 따라 울고 있지만. ‘This is me’는 <위대한 쇼맨> 극 중 레티 루츠를 중심으로 서커스단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특히 이 부분은 끝난 줄 알았던 문장을 시간에 따라 다시 고쳐 쓰며 비로소 완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마치 나의 올해 같기도 해서 골랐다.
- “난 상처가 많지.”
상처를 숨기며 지내다 곪아 터져버렸을 때 꽤 오랜 시간 상처만 돌봐야 했다.
- “난 용감하고 상처도 많지.”
시간이라는 약을 바르며 상처를 마주하고 더 이상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 “난 용감하고 상처도 많지. 난 내가 자랑스러워.”
내가 살아낸 삶을 끌어안기로 한 후부터 회복이라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특히 올해가 그랬다.
- “난 용감하고 상처도 많지. 난 내가 자랑스러워. 이게 나니까.”
머물러있던, 멈춰있던, 머뭇거리던 내가 비로소 앞을 향해 발을 떼고 나아가고 싶어졌다. 힘이 차올랐다.
그리고 … 어떻게 이다음 문장을 이어서 쓰게 될까? 새해가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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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일기 기백을 불어넣자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던 경험 때문일까?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고통을 극도로 피하려 했다. 고통에서 겨우 벗어나 어떻게 찾은 안정인가 싶어서, 이 안정이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이대로 일상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올해 새로운 형태의 일이 많았다. 나한텐 도전이었다. 이것들을 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뚜벅뚜벅 흐르고, 여름이 왔다. 어느 날 밑미 리추얼에서 타인의 일기 속에 있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일은 기백으로 하는 것이라 했다. 당사자가 자신감이 없으면 다 티난다고. 되든 안 되든 기백을 가지라 했다.”
어머니는 그분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신 말씀이지만, 스크린 넘어 나에게까지 큰 힘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일기에는 기백스러운 문장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신이 없을 때, 기백을 불어넣어 어떻게든 잘 되게 하려는 요량이었다.
“이번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럽다. 하지만 늘 잘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잘 해낼 거야.”
“2주만 딱 눈 감고 열심히 해보자. 나 스스로를 믿는다. 내가 나를 안 믿으면 누가 날 믿어주겠는가.”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말 거다. 과거의 내가 어떻게든 해냈던 것처럼.”
누군들 고통이 좋겠나 싶겠지만, 사실 삶에 있어서 고통은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건강한 방식으로 고통스러우려면,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성장의 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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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의 일기 나는 보고 싶은 것을 보아왔고, 찾고 싶은 걸 찾아왔다
이틀째 그칠 낌새 없이 겨울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실히 내리고 컴컴한 잿빛 구름이 푸른 하늘을 두텁게 감춘다. 빗방울이 창문에 닿으면 주루룩, 가느다란 물길이 생긴다. 물길의 모양이 눈물과 퍽 닮아서 마음 어딘가 시큰하다. 아무래도 카페의 복작이는 노란 온기가 필요한 때인 듯하다.
주룩주룩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북유럽을 떠올린다. 북유럽은 여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날이 춥고 어둡고 축축하다. 지금 여기처럼.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짧은 여름에만 경험할 수 있는 따뜻한 온기와 밝은 빛을 특별히 사랑한다. 나는 올 여름을 그곳에서 지냈다. 여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벅차도록 만났다. 해사한 햇살의 환한 포옹, 흙과 풀이 빗방울을 머금고 명랑하게 춤추는 향기, 거대하고 묵묵한 산과 그 산을 오롯이 품은 투명한 바다, 숨막히도록 사랑스러운 새의 고갯짓과 날갯짓, 우두커니 서서 멀뚱멀뚱 눈 맞추는 사슴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 여름 한 철, 살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마음 따라 살았다. 난데없이 태어나 몽땅 처음인 눈앞을 온 마음 다해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즐거워하고, 꽈당 넘어져 아파하는 작은 아이의 삶. 이미 한참 전 지나온 그 작은 아이의 삶이었다.
빽빽한 숲, 거대한 산, 너른 호수, 잔잔한 바다를 담뿍 사랑했고, 오랫동안 곁에 머물렀다. 숲바람이 볼을 보드랍게 스치고, 까마득히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서 나뭇잎이 살랑살랑 인사하고, 호수 둘레 물결이 찰랑찰랑 고운 소리로 다가온다. 어쩜 이렇게 익숙한데 새로울까. 어쩜 이토록 비어있는데 충만할까. 이대로 멈추고 싶어. 바쁜 마음으로 순간에 이름을 붙이려 하지만 숲바람과 나뭇잎과 물결은 붙잡으려 하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없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그리 말하는 듯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고 차차 멀어져 간다. 그런 날은 일기장에 끝 맺지 못한 문장들이 띄엄 띄엄 여백을 맴돌았다. 커다란 아름다움은 말의 범위를 한참 넘어있기에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나의 시도는 언제까지나 실패할 것이다.
특별했던 그곳의 여름을 지나고, 익숙한 이곳의 가을을 지나, 겨울이다. 며칠 전, 짙은 남색빛 황혼녘 호수에서 졸졸졸 헤엄치는 작은 오리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 코, 입, 그리고 주름 하나하나 활짝 미소짓는 걸 알 수 있었다. 코끝이 빨개진 채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보고 싶은 것을 보아왔고, 찾고 싶은 걸 찾아왔다.’
언제까지나 보고 싶은 건 눈앞에 있을 것이고, 찾고 싶은 건 눈앞에서 찾을 것이다.
그게 참 기쁘고 위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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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일기장을 함께 채워갈 필진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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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어떤 속도로 흐르고 있나요?
마마다는 나의 속도를 존중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마음가짐을 일기로 담아냅니다.
내 속도에 맞춰 살기 위한 뭉근한 고민의 흔적이 녹아든 이야기,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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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짝꿍 하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는 최현우입니다. 저는 잠에 들기 전, 깔끔하게 치워진 책상에 앉아 조명의 조도를 한껏 낮추고는 책과 노트를 펼쳐요. 그 시간에는 책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을 옮겨 적기도 하고, 문장에 대한 짤막한 생각을 써보기도 해요. 무엇보다도 책에서 발견한 삶의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해보는 시간을 좋아한답니다. 마마다를 통하여 고요한 시간에 노트에 쓰여진 일기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삶의 자그마한 풍요가 깃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최현우
가볍지만 깊은 삶, 깊지만 가벼운 삶을 살고자 해요.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물 흘러가는 대로 살고자 하고요. 제 삶은 어디로 흘러가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게 될까요. 하윤과 함께 삶의 한 시절을 담아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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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은 채 해온 일이 있어요. 9살 어린이 시절, 엄마도 모르는 마음 속 깊은 어딘가로 홀로 헤엄쳐 깜깜한 상자를 열어 잠잠히 기다리고 있던 말들을 들었어요. 그리고 하얀 종이에 옮겨 적었어요.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나도록 숨을 쉬듯 일기를 써왔어요. 저의 숨을 이곳에 담아도 될까요?"
류하윤
촉촉하게 반짝이는 냇가의 버드나무. 부모님이 주신 이름 따라 물과 나무와 새를 좋아합니다. 둘레를 나른하게 만드는 재주 아닌 재주가 있습니다. 현우와 강릉에서 하루하루 예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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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마다 구독자 여러분. 앞으로 ‘유진의 일기’로 찾아갈 박유진입니다. 21년 12월부터 일기를 매일 한바닥씩 썼더니 저의 일기를 타인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찾아오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일기를 안 쓰고 살았지? 생각할 만큼 저에겐 소중한 시간입니다. 마마다를 통해 즐겁게 생각을 나눠보도록 할게요."
박유진
오랜 시간 몸에 익혀온 성취 욕구와 뒤늦게 눈을 뜬 자기 돌봄 욕구를 밸런스 맞추며 사는 것에 몰두합니다. 스튜디오 휴휴를 운영하며 건강한 개인과 사회를 위한 디자인과 글을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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