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출발 못 하고 머뭇거림)”
“다음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만 생각하세요. 출발!”
“……”
매주 금요일은 수영 스타트를 배우는 날이다. 앞으로 뛰는 건 괜찮은데 물속에서 스타트대를 잡고 거꾸로 뛰는 배영이 문제였다. 다른 건 곧잘 따라 하는데 배영 스타트를 할 때마다 움찔거리며 출발 신호에도 움직이지 않자, 선생님은 왜요? 무서워서 그래요? 다음 걸 생각해서 그래요. 지금만 생각하면 돼요. 라며 휘슬을 다시 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뒤로 던지자, 등과 물이 찰싹하고 세게 닿아 얼얼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어요. 힘 빼고 해야 해요. 곡선을 만들면서 머리부터 가볍게 입수되어야 하는데 상체가 경직되어 있다고 했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 벽에 매달려있는 준비 자세에서는 강하게 힘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출발할 때는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빼야 한다니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캑캑캑. 이번에는 코에 물이 심하게 들어갔다.
샤워 후 머리에 남은 물기를 툭툭 털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다음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만 생각하세요. 사실 그 말은 내가 스스로 자주 하던 말이었다. 창업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물러서는 대신 시작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7년간 피할 수 없었던 고생뿐 아니라 피할 수 있었던 고생 역시 모두 내 일이 되었다. 20대에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정신으로 앞으로든 뒤로든 일단 몸을 번쩍 던지고 보았는데, 해보니까 확실히 알게 됐다. 이렇게 하면 등도 얼얼하고 코에 물도 들어오는구나. 그 후, 꼭 해봐야만 알겠니? 하는 정신이 스멀스멀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시는 코가 매워지는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여기저기 부유하며 지냈던 시간도 몇 년이 되었다.
쉬는 날에 배영 스타트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입수 후 코로 숨을 길게 내뱉기, 숨이 모자라면 입술을 말아 올려 콧구멍을 막기, 코마개를 사용하기 등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익혔다. 같은 반에 있는 분 중 배영 스타트를 잘하는 분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번만 감 잡으시면 잘할 수 있어요. 우선 얕은 물에서 연습해 보세요. 고개를 뒤로 젖혀서 바닥을 보는 연습부터요. 수영장에서는 레인을 거꾸로 넘어가면서 바닥을 보는 연습을 했고, 집에서는 폼롤러로 굳은 등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자 우선 물속에서 몸을 뒤집어 출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날숨을 천천히 내뱉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서 더 이상 코로 물이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도 숨이 모자랄 때는 고개를 살짝 당겨서 빠르게 물 위로 올라오는 법도 익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걸 생각하지 말라는 수영 선생님의 조언은 이제 유효했다.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몸의 곡선을 만들어 가볍게 멀리 뛸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다시 시도해 보기에 이 정도면 괜찮았다. 삑! 휘슬 소리에 몸을 뒤집은 채 물속으로 입수했다. 연습한 대로 숨을 뱉으며 천천히 물 위로 올라왔다. 등이 아프지도 않았고 코가 맵지도 않았다. 자세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음 걸 생각하느라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에 몇 가지 새로운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며 다음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잘 안되면? 또 아프면? … 그래도 괜찮았다. 그동안 몸과 마음의 평정심을 지키는 일상 루틴을 만들어두었고,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준비라기엔 만반의 준비인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휘슬 소리가 무섭지 않다. 삑! 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