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일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을 할까?’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힐난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이어졌다.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엔 나를 괴롭게 했다. 대단히 웃긴 점은 그런 나라고 일을 뭐 얼마나 잘 했냐는 거다. 비슷하게 했거나, 어쩌면 더 못했다. 그때는 내가 그 사람보다 그 일을 더 사랑하니,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 생활을 마무리한 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평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생명’도 ‘감정’도 없는 일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살아있고, 상처도 받는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실수와 잘못된 일은 해결 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조직에서 나왔지만, 직무 특성상 다양한 팀과 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전처럼 누군가의 태도에 아쉬운 마음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왜! 자진해서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밖에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원망스러웠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그 사람 때문에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되뇌었다.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자.’
이 문장은 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줬다. 우선 동료를 같이 일하는 사람보다는, 일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이라고 인식하고자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따로 만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개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미워하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론 나의 해결 방식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바로 ’솔직하지 못했던 것‘. 돌이켜보니 그 사람이 이해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용기 내어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그 사람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서 그 일을 계기로 나아졌을 테고, 나도 다른 동료들에게도 덜 미안했을 것 같다.
여기에서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라고 지칭했지만, 사실 그 ‘누군가’는 ‘내’가 될 때도 있었다. 내가 자진해서 참여한 프로젝트에 내가 원했던 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무척 밉고 자존심 상했다. 하지만 그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때는 그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열심’과 ‘최선’은 주관적인 척도이며,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일하려고 모인 직장에서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자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 같다. ‘일하려고 모인 직장’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하지만 개인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일을 제대로 못하는 누군가를 무작정 미워하는 것보다는 이해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더 지속 가능한 팀 빌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 혹은 영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결심했던 것 같은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일기장이며 메모장을 다 찾아봤는데도…)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를 아시는 분이라면 답장으로 알려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