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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미화원 아저씨 바뀌신 것 같더라.”
“또?”
이 동네에 살게 된 이래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세 번 바뀌었다. 한 아저씨가 황급하게 수풀로 뛰어가는 장면을 보았고, 그가 지퍼를 잠그며 나올 때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근처에 공중 화장실이 없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일터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고, 그건 생각보다 흔한 일일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부터 청소하는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나이 지긋한 분이 새로 오셨고, 그는 늘 눈썰매 같은 것을 손목에 걸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우리 집 앞의 엄청난 경사를 쓰레기를 싣는 기계가 감당하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썰매 같이 생긴 판판한 널빤지에 쓰레기를 나르면 동네에 ‘두두두'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썰매 끄는 소리가 났다.
몇달 전부터는 익숙한 소리가 나지 않았고, 곧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흰머리가 거의 없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찰나, 제대로 접지 않고 버린 아몬드 빼빼로 통이 그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을 보고 절로 고개를 돌렸다. 세 집이 사는 작은 주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쓰레기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매일 보면서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어느 화장실을 쓰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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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가 사내 의료진을 들여,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주사비만 내고 링거를 맞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글을 봤다. 사회초년생 때 갑자기 열이 올라서 일하다 급하게 병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은 저 진짜 아프면 안 돼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아파도 되는 사람은 없어요.”
그 말에 합죽이가 됐다. 다시 회사에 와서는 처방받은 진통제를 여러 번 털어 넣었다. “아픈 건 안타깝지만 될 일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유독 오래 일을 하고 퇴근했다. 그날은 회사에 보건실이라도 있어서 잠시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치료해준다'는 행위는 똑같다 하더라도, 그 목적에 따라서 ‘아'다르고 ‘어'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서가 아니라, 더 많은 성과를 내 회사에 이바지해야 하니까 가까이에 병원을 둔다는 사고방식은, 어쩐지 더 좋은 고기맛을 위해 사과를 먹이는 가축 농장을 떠오르게 했다.
이 건강 패키지에는 간단한 수준의 심리 지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조치를 두고 회사의 ‘혁신'이라고 평가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꽤 많은 회사가 이미 의료 및 심리 케어를 지원하고 있다. ‘혁신은 무슨 혁신이야.’ 하면서도, 그 와중에 어쩌면 그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나 같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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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아직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집에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빠듯한데다, 이따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가 이미 밤 9시 30분이었다. 한 참가자는 지난 주 내내 야근이 있었다면서도 명상을 열심히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선생님인 내게 미안해했다. 다들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버는지는 몰라도, 밤늦은 시간까지 일한다는 것만은 같구나. 8주 수업 중에 한두 번 정도는 회사 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지오웰은 한 수필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며,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나는 그들을 수업에서 자주 만났다. 그들은 나로서 살아가겠다며 눈을 부릅뜬 채, 회사가, 그리고 불안이 자신을 잠식시키지 않도록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A는 회사를 마친 후에 명상 수업에 간다는 것을,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심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꺼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하루 치의 불순물을 비워내고 정리하고서는, 다음 날이면 허둥지둥 립밤을 주머니에 찔러놓고 출근하고, 그날 치의 할 일을 했다. 그는 그날 저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누른 감정을 풀어내면서 우연히 찾아온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는지도 몰랐다. '내가 나를 위해 명상하는 걸까, 더 잘 생산해내기 위해, 회사를 위해 명상하는 걸까?'
수업을 마치고 대관한 공간에서 휴짓조각을 치우면서, 어쩌면 난 조금 다른 종류의 쓰레기를 치우는 자본주의 사회의 청소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대개 각자의 일터에서 시작된, 혹은 일터를 거쳐 온 마음의 짐을 두 손 가득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그들의 짐을 함께 풀어내고 분리수거하고 또 비워내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서로 매번 같은 청소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일이 되면 또다시 쓰레기가 쌓일 것이므로, 이 일을 지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언가를 사들이려면 치워야 한다. 물건을 찍어내는 수많은 회사들이 유지되려면 쓰레기를 치우고 보이지 않게 묻는 시스템이 정교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 명상과 자본주의는 낙산사에서 실리콘밸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의미에선 명상과 자기 돌봄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품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돌볼 필요가 있고, 자기를 돌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명상 선생님 내지는 상담사라는 이 직업도 이 사회가 이러한 모습으로 굴러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터가 많아진다면, 우리 곁에 서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사실 이 직업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1/30 마라톤을 신청했더니만, 무료로 신문을 보내준다길래 아침마다 신문을 읽는다. (마라톤은 취소했지만, 신문은 계속 온다. 돈을 내라고 하려나?) 이런 기사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 우울증 등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20대 사이에서 51% 늘었다. 지난해 교육부의 심리검사 결과에 따르면 대략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살 위험군'이 7만 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자살 위험군보다는 덜 위험한 상태지만 상담, 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은 25만 명에 달했단다. 저 학생들의 10년 뒤, 20년 뒤(부디 그런 게 있기를 바란다.)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나에게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저 학생들을 본다.
고여 있는 감정의 불순물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들을 함께 견딘다. 흐린 눈으로 대충 보고 싶은 구석진 곳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날에는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한 채 부둥켜안고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왜 제대로 비우지 않는지 답답해하다가, 이내 불쌍해한다. 내 쓰레기를 비우러 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면, 그런 나를 불쌍해한다. 아주 가끔은 내일도 반복될 청소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고, 쓰레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지만 쓰레기 앞에서 대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치고 꽤 유난스러운 글이다.) 그냥 오늘도 할 일이 많구나,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오늘도 부지런히 비질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무엇보다 적당한 화장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해 한다. 날 찾아오는 사람들처럼.
덧.
아직도 몇몇 심리학과 교수님들은 상담을 받으러 온 할머니를 부를 때도 반드시 ‘내담자'라고 부르기를 강조하고, 상담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강의실 구석에서 혼잣말로 반박한다. 어떻게 우리만 자본주의를 피해 갈 수 있겠냐고, 그런 꼿꼿한 태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건 현장과의 거리임이 틀림없다고. 아무리 꼿꼿하게 턱을 치켜들어도, 사람들에게 눈물을 훔칠 휴지를 건넬 때, 환불 요청에 응할 때, 내가 정직한 서비스직 감정 노동자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