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인도/네팔 커리는 특별하다. 누군가 식사 메뉴로 ‘인도 커리’(표기법을 고민하다가 깨달은 건데 막상 유명한 식당은 ‘네팔 음식점'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은 반면, 사람들은 모두 인도 커리라고 부르지 네팔 커리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의 제안을 표현하는 부분이라 인도 커리라고 씀.) 를 권했을 때 한 번도 ‘당기지 않는데' 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더 보편적이거나 안정적일 것 같은 라면이라든지 찌개 혹은 햄버거 같은 것들은 날마다 그 메뉴에 대해 구미가 당기는지 여부가 매우 확실하게 나뉘는 편이라면, 인도/네팔 커리는 희한하게 다른 것들에 대한 상상을 모두 덮어쓰기 하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만큼, 동대문의 히말라야부터 이태원의 아그라 등, 인도/네팔 요리로 유명한 식당은 제법 가보았지만 지금까지 마음 속 일 등은 ‘수엠부'라는 작은 식당이다. 서강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신수동의 이 작은 네팔 식당은, 나와의 역사가 이제 10년을 넘어가는 곳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수엠부를 운영하는 사람(혹은 가족)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주인이 계속 바뀌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수엠부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주인이, 요리를 하고 전반적인 식당 살림을 할 사람(가족)을 고용하면 그들이 실질적인 식당 운영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하며 다음 사람을 구하는 식의 구조였다.
맨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는 조금 씁쓸했지만, 이내 그 씁쓸함은 ‘그렇다면 그렇게 여러 번 사람들이 바뀌는 동안 너무나 알맞고 적당한 커리의 간이나 난의 굽기, 푸짐함 같은 것들은 어떻게 유지되어 온 걸까?’라는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같은 재료와 양념을 쓰는 엽기떡볶이나 교촌치킨 같은 체인점에서도 지점마다 미묘하게 다른 레시피나 재료의 양, 감칠맛 같은 것들을 캐치해내는 세상에서, 몇 번씩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뀌는 동안 수엠부가 그냥 기복 없이 수엠부일 수 있는 이유는 뭐였을까.
이 쓸데없는 궁금증은 여러 가설로 이어졌는데,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 손님들이, 수엠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그저 ‘네팔 현지인들’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더 깊은 관찰이나 인식을 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의도치 않은 무심함과 무지한 태도 때문일 지 모른다(!)
이를테면 매일 가던 백반집 사장 할머니가 갑자기 어느 날 안 보이고 서툴러보이는 젊은이가 사장 행세를 하며 부엌을 쏘다니고 있으면, 갑자기 오늘따라 국이 싱겁거나 계란말이가 퍽퍽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은가. 만일 위에서 내가 제시한 가설과 같이 사람들의 무지함 혹은 무심함이 실재한다면, 수엠부의 맛이 사람 따라 조금 바뀌거나 기복이 있다고 해도 ‘주인이 바뀌어서 그래~’ 같은 류의 결론이나 정확한 인지 없이 그냥 어물쩡 넘어갈 수 있는 구조를 (의도치 않게) 갖추게 된 걸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멀리 간 생각.
물론 이보다는 조금 더 무던하게, 그냥 수엠부에서 내놓는 요리가 대단히 특별한 맛이라기 보다는 요리 솜씨나 손맛이 조금만 있으면 구현할 수 있는 전형적인 요리라는 가설도 있다. (흠, 그렇다면 수엠부의 커리와 난이 왜 서울 대부분의 다른 가게들보다 계속해서 더 맛있고 훌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여러 엉뚱하고 이상한 가설들을 지나는 동안 스스로 깨달은 새로운 사실 하나는, 나는 원래 카페든 술집이든 식당이든 어떤 공간을 상상할 때 그 공간을 운영하거나 이끌어가는 사람을 무척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편인데, 수엠부에 대해서만은 놀라울 정도로 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인식, 같은 것이 적다는 사실이다. 10여년의 역사를 함께 쌓아왔다, 고 말하면서도 10여 년 동안 수엠부 부엌을 거쳐간 사람들의 얼굴이나 특징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조금의 놀람.
그 놀람은 그리고 자연히 이런 지점들로 연결된다. 수엠부는 엄연히 네팔 음식점이고 나는 수엠부를 가고 싶은 것인데도 자꾸 ‘인도 커리' 먹으러 가자고 한다든지, 치킨 티카 버터 마살라는 사실 영국의 대표 음식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도 커리의 일종으로 알고 있다든지. 인도 커리가 맞는지 네팔 커리가 맞는지 정확히 분류하여 표기하는 대신 인도/네팔 커리라고 적당히 퉁치려 하는 나의 게으른 태도.
우선 이 글을 마치는 대로 인도 커리와 네팔 커리의 차이점을 검색해봐야 겠다. 그리고 조만간 수엠부에 가서, 앞으로 나와 새로운 수엠부 역사를 함께 할 얼굴들을 다정히 바라보고, 고유함을 발견하려 관찰해보고, 특징으로서 기억해보아야지.
P.S. 수엠부는 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