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침대에 눕자마자 자거나, 깊게 잠드는 편은 아니었다. 예전에 친구 네 명과 여행을 가서 둘씩 더블베드에 나눠서 잔 적이 있는데, 함께 침대를 사용했던 친구가 자신이 뒤척거릴 때마다 내가 깨서 힘들었다고 했다.
빛 차단을 위해 수면 안대를 끼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깨서 귀마개를 낀다. 호기심에 샀던 입벌림 방지 테이프까지 했을 땐… 이렇게까지 하면서 잠을 자야 하는 내가 우스웠다. 숨을 쉬어야 하는 콧구멍을 빼고, 얼굴에 뚫린 곳(눈, 귀, 입)을 다 막는 게 웃겼다.
이런 내가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아주 깊게 잠드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작년 6월 사정상 친구네 집에서 잠깐 지낼 때, 꽤 큰 소리가 나도 깨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수면 패턴이 바뀔 수 있지? 신기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각자 짐작 가는 이유를 말했다. 그중 가장 공감 가는 이야기를 마침 나와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가 했다.
“너 제리(반려견)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니야?”
친구는 내가 그동안 제리를 신경 쓰면서 자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짚었다.
제리가 살아있을 적에는 줄곧 나 혹은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잤다. 우리는 밤마다 제리를 데려가 함께 자기 위해 티격태격했다. 제리는 가끔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고, 밥을 더 먹고 싶어 했고, 어떨 땐 토(급하게 먹은 저녁이 체해서)를 했다. 엄마는 잠들면 아무 소리도 못 듣는 편이라 내가 제리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깨서 새벽의 시간을 보살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잠귀가 밝아졌나 보다. 나에겐 돌봐야 할 존재가 있으니까.
제리가 죽기 전까지는 살면서 죽음을 맞이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큰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수능 직전이어서 가족들이 장례실에 못 가게 했다. 시간이 지난 후, 시험 때문에 친척의 장례식을 못 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신없던 그때는 알겠다고 했다.
삶의 끝에 죽음은 당연히 함께 하는 것인데, 경험한 적이 없으니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제리가 18살 노견이라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이별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 해 여름은 무척 바빴다. 퇴사하고 이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일을 받았다. 매일 10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하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꽤 들떠있었다. 아침과 밤 시간을 쪼개 제리를 보며,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여 부모님께 병원에 데려가길 부탁했다.
하필 연휴가 껴있고, 가족 모두 바빠서 병원에 가는 게 하루 이틀 미뤄졌다. 그땐 그게 골든타임일 줄 상상도 못했다. 제리는 약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았다. 살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라고 믿고 견디며 시간을 통과했다.
제리는 엄마의 퇴근 시간인 오후 3시, 집에 도착해서 잘 있었냐는 인사를 하자 엄마를 기다렸던 것 마냥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숨을 거둔다’는 문장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내 숨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고 불편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요가를 하던 어느 날, 사바아사나 때 들리는 나의 숨소리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일 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더 이상 사바아사나를 할 때 울진 않는다. 잠을 깊게 푹 자게 되었고, 매일 숨을 의식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