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차에는 다섯 명이 있었다. 애정 하는 동네 책방 사장님 부부와 아이들 셋. 거기에 우리 부부 둘이 더해져 일곱 명이 한 차에 타고 강릉에서 평창으로 향했다. 여행은 한 달 전에 계획되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장님은 우리에게 초등학생 첫째 아들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언제 한 번 눈 쌓인 곳으로 출사를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날 아침, 세 명이 더 합류했다. 둘째와 셋째, 그리고 아내분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그 이유인즉슨 이틀 전부터 눈이 펑펑 내렸기 때문이다. 강릉보다 눈이 더 많이 오는 평창은 또 얼마나 많은 눈이 쌓여있을까. 분명 특별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아름다운 주말, 아빠와 오빠만 좋은 곳으로 보내기엔 분명 아쉬웠을 테지. 그렇게 모두가 함께 놀다 오기로 했다.
아이들과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종종 사장님과 책방 출근을 함께 하곤 했는데, 사장님이 차로 아이들을 등교시켜주고 출근하다 보니 아이들 등굣길에 함께하며 안면은 튼 상태였다. 만날 때마다 아빠가 ‘안녕하세요 해야지'라고 하면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는 차에 타 있는 내내 조용히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놀러 가는 날이라 마음이 활짝 열린 걸까.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아기 새들처럼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쫑알 쫑알 대기 바빴다.
제설차 기사님들이 도로의 눈을 부지런히 치워주신 덕분에 곤혹을 치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옆으로 펼쳐진 눈꽃 풍경들이 깔끔하게 치워진 도로와 대비되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멀리에는 눈으로 뒤덮인 하얀 산에 깃발처럼 꽂혀진 풍력발전기가 보였고, 가까이에는 무거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들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들은 고동색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눈에 뒤덮여 있있다. 보통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나무의 한쪽 면만 눈이 쌓이기 마련인데, 이를 보며 눈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새삼 실감했다. 이렇게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파묻힌 풍경을 보는 건 아이들이나 우리나 처음이라 ‘우와, 우와!’ 소리 내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평창의 실버벨 교회로 향했다. 언덕 위에 돌로 지어진 소박한 교회인데, 언덕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회색빛 교회와 대비를 이루었다. 주차장이 가득 찰 만큼 사람이 많았지만, 교회 내부에는 단 한명 뿐이었다. 그 사람마저 교회를 구경한다기 보다는 난로 곁에서 불을 쬐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해 보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었냐하면, 교회 밖에서 각자만의 눈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김치통을 가져와서 이글루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각자의 썰매를 가져와서는 언덕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창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은 썰매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것도 무려 다섯 개나! 그때부터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썰매를 탈 생각에 가슴이 두근댔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썰매를 타는 게 오늘의 목적인 사람처럼. 썰매를 타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 일이라, 오랜만에 썰매 탈 생각에 마음이 들떴나 보다. 교회를 목적지로 두고, 출사 여행을 왔으니 교회 내부를 훑어보기야 했지만, 마음은 이미 썰매를 타고 있었다. 그 사이 사장님과 첫째 아들이 차에서 썰매를 가져왔다.
그곳은 상업 썰매장이 아니라 그저 경사 높은 언덕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곳이 원래 썰매장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사장님에게 썰매를 건네받은 나는 출발점에 섰다. 썰매에 앉아서 아래를 보니 생각보다 경사가 급해 보였고, 끝에는 나무 덤불이 있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타서인지,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살짝 긴장이 되어 썰매 줄을 꼬옥 잡았다. 그러고는 두 발로 바닥을 밀어 썰매에 몸을 맡기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내려가기 시작하자마자 소리를 냅다 질렀다. 조금 무섭기도 했고 동시에 아주 신나기도 했는데, 시시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릴 있었다. 언덕의 끝자락에는 거친 나무 덤불이 자리해있어서 거기에 푹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속도를 줄여야 했는데, 양발 뒤꿈치로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다 보니 몸과 얼굴에 눈이 한가득 튀었다. 덤불 앞에서 눈을 한껏 뒤집어 쓴 채 겨우 멈춰 서는 ‘하아~’하고 철퍼덕 드러누웠다.
아이들과 누가 더 멀리 가는지, 누가 더 빨리 가는지 시합을 하기도 하고 2인 1조가 되어 앞뒤로 사이좋게 타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찌나 재밌어하던지, 연신 눈을 뒤집어 쓰면서도 깔깔깔 웃었다. 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과 아내의 표정을 보며 내 표정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째는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밭에 벌러덩 눕더니 소금쟁이처럼 팔다리를 쭉 펴고는 위아래로 휘적거렸다. 나는 여분으로 가져온 옷도 없고, 눈이 몸 안으로 들어갈까 봐 드러눕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눈이 몸에 들어가든 말든, 감기에 걸리든 말든, 갈아입을 여분의 옷이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벌러덩 누워서는 헤헤 웃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도 없이 최선을 다해 신나고 재밌게 놀았다. 덕분에 그들과 함께 있는 나 역시도 아이처럼 순수하게 놀았다. 누군가 보기에는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잘 놀아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내가 그들의 또래 친구가 된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썰매를 다시 타기 위해 언덕을 오를 때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썰매를 타는 어른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썰매를 타서 신이 났는지 깔깔깔 소리 지르며 행복하게 노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덕분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으레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면 얼굴은 피곤해 보이고 몸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축 처져있는데 반쯤 정신을 놓고 소리를 지르며 썰매를 타는 그 어른들은 누구보다도 해맑고 순수한 어린아이들 같았다.
저녁이 되어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째는 ‘오늘 하루 짱 재밌었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셋 모두 잠에 들었는데, 첫째는 자신의 소중한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뜨렸는지도 모를 만큼 깊이 잠에 들었다. 갈 때는 모두들 쫑알대기 바빴는데, 모든 체력을 다 쏟아냈는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온 힘을 다해 신나게 놀며 많이 웃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들은 내 이름도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나. 그저 하루 재밌게 놀았으면 그만인 것을. 눈싸움 아저씨 정도로 기억되려나. |